대통령의 메시지는 많이 바뀌었다. 이념에 경도된 발언도 거의 없고 야당이나 전 정부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발언도 마찬가지다. ‘지지율을 신경쓰지 않는다’ ‘반대가 많아도 할 일은 한다’라는 등의 오만한 발언도 사라졌다. 대통령뿐 아니라 대통령실에서 나오는 메시지도 많이 조심스러워졌다.
차를 몰던 사람이 U턴을 한 것처럼 방향성 자체가 바뀐 느낌인 것. 이에 대해선 여론도 호의적이다. 하지만 U턴은 필요조건일 뿐이다. 깜빡이도 잘 켜고, 과속하지 않으면서도 차량 흐름을 잘 타면서 죽죽 나아가서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 하지만 방향성이 바뀌자 오히려 각종 삐그덕거림이 눈에 띄고 있다.
행정전산망 마비가 대표적 사례다. 인사청문회에서 여당으로부터도 빈축을 산 합참의장 후보자의 흠결, 인사 갈등으로 촉발된 국정원의 내홍 등도 마찬가지다. 의대 정원 확충, 국민연금 개혁, 주 52시간 근로시간 조정 등도 지지부진하다. 대통령의 잦은 해외순방에 대해선 곱지 않은 시선이 여전하다. 이념이나 정치갈등으로 ‘화끈한 대립각’을 세울 때보다 외려 잡음이 많이 들리는 느낌이다.
예산 국회 이후로 예고된 대규모 내각-대통령실 인사 과정에서도 삐그덕거림이 더 커질 수 있다. 하지만 다시 U턴을 해서 원래 가던 길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 중심의 기조를 지키는 뚝심, 내 사람이 아니라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을 뽑아서 쓸 수 있는 인적 풀의 확장 외엔 답이 없다. 연말까지 이런 기조를 지키고 전향적 인사를 단행한다면 상당한 성과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방향성을 견지하기 위해 여당의 안정이 필수적인데 지금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현재 대통령이나 대통령실 역량으로 국정과 여당의 정무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과거처럼 찍어 눌러서 잡음이 못 새어나게 할 수도 없고 창의적인 정무 기획력을 발휘할 역량도 없다. 당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정책 단위나 대변인단은 나름대로 변화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대표’, ‘핵관’, ‘중진’ 들은 여전하다.
민주당에선 재판에 몰입해 있는 이재명 대표의 존재감이 점점 미약해지는 가운데 송영길, 조국 등의 인사들은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의원직을 박탈당한 최강욱 전 의원 같은 경우는 훨씬 더 홀가분하게 전국을 누비며 여러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극심한 공천 경쟁을 뚫어야 하는 원내외 인사들은 이들의 손을 잡고 경쟁적으로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출판기념회, 북토크, 유튜브 등 민주당 인사들의 행사에서 대통령 탄핵 이야기조차 더 이상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한 대표와 원내대표의 우려 표명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이준석 신당’ 등에 대한 주목도가 상승하고 있지만 현역 의원들의 ‘실제 행동’은 오히려 민주당에서 먼저 나올 가능성이 높은 이유가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