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에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지 못했다면 주식·외환시장의 압박, 우방국의 압박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리 대중들의 압박이 폭발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1차 투표 직전과 달리 이번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29분의 영상 담화를 통해 계엄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부정투표론자들에게도 불을 붙였기 때문에 대중의 분노가 더 거세진 것. 민주당 역시 탄핵소추안에서 외교정책이나 용산 참사 부분은 빼고 비상계엄만을 남겨 정치적 오해소지를 줄였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탄핵불가피론이 상당히 힘을 얻었지만 의원들 다수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며 나머지를 압박했다. 중진 의원들은 한동훈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일주일만 더 버티자”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냐?’는 질문에 아무도 답을 하지 않았다는 것. 일주일을 더 버티는 것이 가능했을지 모르겠지만, 버틴다해도 욕을 더 먹는 것 외엔 사정변경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원외 당대표의 한계, 릴레이 의총을 통한 다수 의견의 구심력 강화 등으로 인해 국힘 내 찬성표는 생각보다 작았다. 이를 통해 힘의 차이를 확인한 주류 진영은 한동훈 체제를 종결시켰다. 하지만 이제 친윤 주류로 단일대오를 형성한 국민의힘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일단 여론과 당심 사이에서 압착되어 어려움을 겪던 한동훈 대표가 사라지면서 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 주류 진영이 여론과 언론을 그대로 상대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논리와 워딩으로는 감당이 불가능할 것이다. 과거 권성동 직무대행 시절, 김기현 당대표 시절도 그랬는데 이번은 탄핵 정국이다
또한 탄핵 이후 당과 보수진영과 연결고리를 끊고 극도로 말을 아끼며 개인적 차원으로 법적 대응을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달리 윤 대통령은 지지층 결집으로 전선 구축을 꾀하고 있다. 국힘 내에서도 “탄핵 심판 동안 반드시 바로잡겠다”는 의원들이 있다. “내란이라는 증거가 있냐”는 의원들은 다수다.
그리고 탄핵 가결론자들을 정치적으로 축출한 만큼 자기 정당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한동안 탄핵은 잘못됐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탄핵부당론은 즉각적으로 계엄불가피론으로 연결될 수 있다. 조기 대선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윤 대통령과 태극기 부대에 엮여버린 것. 이런 식이라면 국힘과 보수진영은 대선 이후에도 오랫동안, 박근혜 탄핵 이후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보수 분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민주당은 여러모로 여유가 있지만 이재명 대표 입장에서 보자면 시간표 싸움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신속히 하라고 촉구하는 마당에 자기 재판을 늦추는 이런 저런 행동을 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대해 각급 법원의 재판 절차가 너무 길어진다는 비판도 거센 상황이다.
시간표 싸움에도 불구하고 조기 대선이 실시될 경우 차기 권력에 제일 가까이 가 있는 사람은 이재명 대표가 분명하다. 민주당 내에서 제대로 된 경선이 실시되기엔 시간이 촉박하고, 현재의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스스로 포획당하는 형국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익과 당의 이익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이익간 교집합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마땅하다. 안정감 강화가 과제의 A이자 Z이다, 한덕수 권한대행에 대해 “‘일단’은 탄핵을 안 하기로 했다”는 식의 압박성 발언은 좋지 않다. 이재명 체재에 대한 공포감을 더 키울 뿐이다. 힘으로 누르면 집권 가능성도 떨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