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국면 자체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회가 탄핵 소추했지만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재가 소추안을 인용했다. 현 상황을 굳이 비교하자면 후자와 유사하지만 후자에 비해 훨씬 심각하다.
박 전 대통령에 국정농단 이슈는 2016년 9월부터 불거졌다. 의혹이 점점 더 커지고 대통령 지지율은 계단식으로 하락했다. 여당이 방어막을 거둬들였고 3개월여 만에 사실상 여야 합의로, 여당 절반가량의 찬성으로 탄핵안이 처리됐다. 대규모 장외 집회가 이어졌지만 큰 충돌이나 혼란은 없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기간 동안에도 각 진영은 정쟁을 자제해 국정은 오히려 안정감을 되찾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 그 이전부터 국정운영에 대한 비판이 높았고 낮은 지지율에 허덕였지만 탄핵 위험에 직면해있진 않았다. 하지만 지난 3일 밤 비상계엄 선포 시점에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계엄선포 두 시간여 만에 국회가 신속히 만장일치로 계엄해제 요구안을 가결한 순간 사실상 탄핵이 된 것. 국회와 선관위에 출동한 군인들의 태업성 행동, 군과 국정원 고위 관계자들의 양심선언성 고백, 계엄 해제 이후 국방부와 합참의 ‘비상계엄성 지시 거부 선언’ 등은 그가 이미 군 통수권을 상실했음을 증명했다.
국민들의 충격과 분노는 말할 것도 없다. 국정농단 사태 때 보다 훨씬 더 충격이 크고 압축적이다. 국정농단은 혐오와 정치적 반대를 이끌어냈지만 공포심을 자아내진 않았다. 또한 박 전 대통령과 윤 대통령의 캐릭터, 말하는 모습, 주위에 대한 태도 등은 비교할 수조차 없다. 정치적, 인간적 방어막 자체가 없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 상황은 법적, 정치적으로 정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8년 전 보다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한데, 여당은 정반대 태도를 취하고 있다. 현재 친윤+영남기반 다선으로 이뤄진 여당 주류는 “탄핵을 가결시켜 보수가 궤멸했다”는 논리로 당을 틀어쥐고 있다. 당대표가 전면에 나서 있긴 하지만 실제 장악력은 의문이다. 계엄선포 때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했던 추경호 원내대표를 재신임하자는 의견이 75%에 달했다는 점이 당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즉각적 직무정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던 한동훈 대표는 현재 거센 여론과 완고한 당론에 압착되어있는 형국이다. 여러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여론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당에서는 줄곧 “그것도 과하다”는 비토를 받고 있다. 이른바 ‘한동훈-한덕수 체제’가 (일단 그것이 옳나 그르냐를 떠나) 탄핵에 대한 대안으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여론과 야당의 용인이 필요한데, 당내에서조차 압도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향후 국면을 예측하긴 극히 어렵지만 이런 교착이 오래가기 어렵다. 9일 오전에도 국회에 투입됐던 707특임단장(대령)의 양심선언성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검찰과 경찰이 속도전 양상으로 수사를 하고 있는데 그 전개 상황도 속속들이 전해질 것이다. 시장(금융, 주식, 기업)과 동맹국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탄핵은 안 된다는 쪽의 논리가 강해지고 여론이 호응할 리가 만무하다.
계엄해제 이후, 관련 사실들이 전해지면서 그나마 한동훈 대표가 명분을 잃지 않았고 18명의 의원들이 봉쇄망을 뚫고 해제결의안 투표에 참여했기 때문에 이들을 중심으로 여당이 수습되고 향후 국정 운영을 이끌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게 굴러가고 있다. 박근혜보다 윤석열이 여당에 대한 강한 장악력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자기 책임이 큰 다수의 사람들이 책임이 약한 소수를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다시 말하지만 오래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