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대통령실이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의 사퇴에 이어 이종섭 호주 대사의 귀국까지 결정한 것은 지난 20일(수) 오전이다. 대통령실이 이 문제들에 대해 완강한 태도를 취했지만 어두워지는 총선 전망과 그에 따른 당의 압박에 버티지 못한 것. 물가 문제, 비례대표 공천 갈등 등이 겹쳐 4년 전 총선의 대패와 유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었다. 이 상황에서 오히려 강경 보수층이 목소리를 높이고 한동훈 비대위원장 한계론 등 여러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분출된 것.
어느 정당이든 내재된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지만 여권에서 드러나는 이슈들 중 어떤 것은 원인이고 어떤 것은 현상일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강고한 반대 혹은 불신, 물가 문제를 비롯한 민생 이슈,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피로감 누적 등을 그 중에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면 일주일여 동안 이 원인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거나 덮을 수 있는 방향으로 캠페인이 전개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대통령실이 한발 물러서고 여당이 민생 이슈에 대한 발언량을 늘리며 공약을 끌어올리는 점, 한동훈 위원장이 의대 교수들과 대화에 나서면서 전공의 징계 유예를 이끌어낸 점 등은 모두 적절한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접근들이 조금이라도 성과를 낼 수 있느냐, 유권자들의 반향을 일으키는 데까지 갈 수 있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게다가 대통령실발 혹은 돌발성 악재가 터진다면 현재의 안간힘은 무용해질 것이다.
민주당의 경우 후보 등록 시점에서 강북을 공천 취소와 급조된 재공천, 후보 등록 이후 세종갑 공천 취소 등 (공교롭게도 모두 친명 원외 후보들의 문제점)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 공천 갈등은 오랫동안 지속됐기 때문에 별다른 추가적 타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민주당은 이른바 비명횡사 친명횡재 논란 등 제기되는 문제점에 대해 별다른 교정 없이 정권심판론에만 집중해 왔다. 현재로선 이런 전략이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
하지만 이재명 대표 그 자체의 위험 요소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총선 중 진행되는 재판 불참 논란 등 사법리스크는 이미 익숙한 이슈지만 ‘중국에 셰셰’, ‘강원서도’ 등 거친 실언들이 거의 매일 등장하고 있는 것. 대통령 탄핵 시사 발언은 전략적 강수라 하더라도 “물가를 잡아야 하니 전 국민에게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을 지급하자”라는 식의 발언은 납득하기 힘든 수준인 것.
민주당은 인적 풀이 국민의힘에 비해 풍부하지만 이미 선거 진용을 ‘이재명 원톱’ 체제로 꾸려 놓은 상황이다. 현재로서 민주당의 최대 리스크 요인은 이 대표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탄핵 시사 발언들은 민주당의 압승에 브레이크를 거는 쪽으로 작동할 것이다.
조국혁신당의 강세는 윤 대통령에 대한 심판 정서와 이 대표 리스크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해 거의 모르쇠로 일관하고 “(윤 대통령 남은 임기) 3년은 길다”만 반복하는 단순(명료)한 전략을 채택하고 있지만, 거대양당조차 별다른 정책적 쟁점을 만들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의 약점이 제대로 노출되지 않고 있는 것. 조국혁신당이 내세운 비례대표 라인업의 문제점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라 할 수 있다.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 녹색정의당은 앞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내기 어려워 보인다. 진보당은 다르다. 이미 비례에서 당선권 자리를 확보한데 이어 부산연제구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민주당을 꺾었고, 울산 북구에서도 민주당 출신 무소속 후보를 꺾고 단일후보 자리를 쟁취했다. 민주당 그늘 아래서 차분히 실리를 챙기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