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참사에 대해 지난 주 우리는 “거칠게 보면 한국 사회 앞에는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고 말했다. 이 중 두 번째가 “그간 많이 봐왔던 대로 공세와 역공세, 정치적 손익계산을 통해 정치, 이념, 세대 갈등이 더 극심해지는 것이다. 천안함 폭침, 세월호 참사 등이 걸었던 길”이었는데 이미 이 길로 접어들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방어’에 급급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 사고에 대해 법의 잣대와 ‘구체적 책임’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 대통령은 피해자와 전체 민심 앞에 겸허하고 책임 있는 자세로 접근하고 주무 장관이나 총리는 안정감을 주는 쪽으로 가야 했지만 그렇지 못한 것. 특히 행안부 장관과 총리의 언행이 문제를 키웠다. 이들의 이런 행보 역시 대통령의 책임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만약 행안부 장관이 계속 직을 유지하게 된다면 일은 더 꼬일 것이다. 이상민 장관의 구체적 책임 여하를 떠나 그는 이미 이번 참사의 ‘상징적 인물’이 되어버렸다. 대중이나 야당은 물론 여당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사과나 좋지 않은 일에 대한 ‘조치’는 일반의 예상보다 더 커야 한다는 것이 많은 위기관리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이번 일이 아니라도, 지금까지 윤석열 대통령은 이와는 반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본인의 캐릭터에 비롯되는 행보였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닌 것 같다.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 역시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삼권분립,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면에서 그렇다. 국회가 이런 참사 앞에서 정부가 어떻게 하는지 가만히 보고 있으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둘째 여야가 같은 테이블에 앉는 것 자체가 일종의 ‘버퍼존’을 형성할 수 있다. 정부 여당 입장에서, 자신들에 반발하는 민심과 대중을 야당이 대표하는 것이 훨씬 낫다. 그렇지 못하면 정부여당이 ‘광장’과 직접 부딪히게 된다.
세월호 국면이 딱 그랬다. 그때처럼 날 것 그대로의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 제도의 장이 열리면 야당 역시 책임성이 높아지고 자기 실력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셋째, 국정조사 등 국회 차원의 제도적 틀을 거부할 경우 정의당이나 시대전환 등 민주당이 주장하는 특검에 대해 반대하는 군소 야당, 이들과 비슷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중도성향의 대중들을 돌아서게 만들 것이다. 여권이 ‘고립’된다는 이야기다.
매를 맞아야 한다. 매를 맞아야 국민들의 ‘분’이 풀린다. 매를 빨리 맞아야 한다. 그래야 숙제에 전념할 수 있다. 매를 잘 맞아야 한다. 드잡이를 하고 안 맞으려고 피하다 보면 손상이 큰 부위에 급작스레 맞을 수 있다. 교훈, 재발방지가 아니라 엄청난 고통과 트라우마를 남기는 매가 된다. 그렇지 않기 위해선 정제된 형식으로 자청해서 맞아야 한다.
전반적 리셋의 계기로 삼으면 더 좋을 것이다. 정부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경제, 안보, 외교 현안이 너무 많다. 그래서 빨리 리셋이 필요하다.
최근 야당(민주당) 역시 안정된 모습을 보이진 못하고 있다. ‘윤석열 퇴진’구호를 외치는 쪽과 교집합이 너무 커 보인다.
일단 민주당이 인식해야 할 점은 자신들의 위상이다. 광우병 촛불 집회나 세월호 국면에서 당시 민주당 계열 정당과 지금은 다르다. 그때는 의석도 작았고 위상도 낮았다. 광장을 이끌 의지도 없어 보였지만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현재 민주당은 바로 얼마전까지 집권을 했었고 원내 과반 의석을 보유한 강한 정당이다. 책임감, 역량, 부담이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 따라갈 수도 없고, 딸려 갈 수도 없다. 제도안의 리더가 되야 한다. 민주당에게도 냉정한 전략적 계산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