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의 도화선이 됐지만, 검찰 공소장은 사실 매우 단순하다. 산자부 공무원들이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문건을 무단으로 삭제했다는 것. 에너지 전환(탈원전)정책의 당부에 대한 것도 아니고 그 문건의 내용에 대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문건의 제목들은 상당히 민감한 것이 많았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이나 조태용 의원 등 보수진영 외교안보 전문가들도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비핵화-원전 제공’ 패키지는 김영삼 정부 시절 KEDO 시절부터 시작된 것이다. 또한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의 동의 없이 비밀리에 북한에 원전을 제공할 방도는 전혀 없다.
야당이 정략적 의도로 일을 키운다고 볼 소지가 충분한 것. 하지만 여권의 대응도 미숙하다. 청와대 대변인이 곧바로 ‘법적 대응’을 언급하고 나섰고 “박근혜 정부 때 문건이다” “남북 정상회담 당시 USB 전달은 없었다” 등의 여당 발언도 일을 키운 것.
선거를 앞두고 ‘밀어보자’는 작용과 ‘밀리면 안 된다’ 반작용이 부딪히는 형국인 것. 법관탄핵이나 곧 단행될 것으로 보이는 검찰 고위직 인사 등도 갈등 에너지를 높일 소재들이다.
‘북원추’ 문제는 당장 말끔히 해결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 초반 ‘적폐 청산’ 때는 물론 과거 정부 때도 ‘문건 목록’들로 인해 장기간 정치적 공방이 벌어진 적이 많았다. 만약 이 공방이 검찰이나 공수처로 넘어간다면 나비효과의 종착점은 더 예측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당장 여야 서울시장 후보들은 ‘북원추’에 가세하고 나섰다. 안철수, 오세훈, 나경원 등 보수 후보들의 목소리가 더 높고 박영선 등 여당 후보들은 방어선을 치고 나선 것.
여당 당권 주자들도 이 사안에 뛰어들 것이 분명하고 이 과정에서 여야 강성지지층들의 목소리가 과잉표출될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여야 모두 지지층 결집 효과는 거둘 수 있겠지만 중도층 이반 위험도 점점 커질 것이다.
이로 인해 시장 후보들이 계속 이 사안에 묶여 있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금태섭 후보 등은 차별화된 면모를 보일 수도 있다.
또한 이 상황은 차기 대선주자군 중 1강을 달리고 있는 이재명 지사에게 나쁘지 않은 국면이다. 이낙연 대표는 사안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 지사는 재난지원-부동산 등 이슈에 주력하면서 이 문제에는 선택적으로 개입할 것이 분명하다. 설 연휴를 앞두고 긍정적 차별화를 지속할 기회인 것.
물론 제일 중요한 것은 청와대의 의중과 행보이다. 야당 공세에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겠지만 코로나19 등 민생이슈에 집중해 논점을 이동시키고, ‘북원추’에 대한 이슈 비중을 떨어뜨리는 기획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