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시설, 특히 안전에 대한 우려가 큰 원자력 관련시설은 지역주민의 동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간의 방폐장 건립 역사를 살펴보면 지역주민들의 사전의견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한 정부에 대한 불신이 부지선정 무산에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방폐장 건설이 처음 논의된 것은 첫 원전인 고리원전이 상업운전을 시작한 1978년에서 6년이 지난 1984년이었다. 제211차 원자력위원회에서 '방사상폐기물관리 기본원칙을 정했고 정부는 경북의 울진·영덕·영일 등 3개 지역을 후보지로 선정했지만 사전조사 중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중단됐다.
1990년 정부는 '서해 과학연구단지'란 이름으로 안면도에 방폐장을 건설을 시도했다. 방폐장을 연구소로 위장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안면도 인근주민들은 경찰서에 불을 지르는 등 크게 반발했고 그 결과 당시 정근모 과학기술처 장관이 사퇴하기도 했다.
이후 1993년 전남 장흥과 경남 고성, 1994년 경북 울진 등에도 방폐장 건설을 추진했지만 모두 주민 반대로 좌절됐다. 결국 정부는 같은 해 말 거주자가 9명에 불과해 주민갈등 소지가 적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소재의 굴업도를 낙점하고 방폐장 건설을 추진했다. 그러나 굴업도는 지질조사 결과 방폐장 건설이 불가능한 '활성단층' 지역임이 밝혀져 이 계획마저도 취소된다.
가장 격렬한 갈등이 있었던 곳은 2003년 전라북도 부안이었다. 같은 해 부안지역의 위도 주민들이 80%의 주민 동의를 받아서 유치신청을 했다. 그러나 부안군의회가 이를 부결시켰고 부안군수가 의회 결정에 반하여 유치신청을 하면서 갈등이 커졌다. 이후 6개월간 찬반세력으로 나눠져 격한 갈등이 있었고 결국 부안 방폐장 건립도 이뤄지지 않았다.
부안사태 이후 정부는 2004년도에 중저준위 폐기물과 고준위폐기물(사용후 핵연료)를 처분장을 구분해서 건립하는 것으로 정책방향을 틀었다. 이듬해인 2005년 3월에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방폐장 건립에 속도가 났고 최종적으로 경주가 선정됐다.
현재 경주에 건립돼 운영중인 방폐장은 방사능 농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중저준위 폐기물만을 처분할 수 있다. 중저준위 폐기물은 원전내 작업자가 사용한 장갑이나 피복 등이 대부분이다. 원전에서 발전을 위해서 사용되고 난 사용후 핵연료는 경주 방폐장에서는 처분할 수 없는 고준위 폐기물이다.
남은 과제는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이다. 사용후핵연료는 중저준위 폐기물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험성이 크다. 정부는 전면적인 '공론화' 방식을 택해 처분방식 및 유치지역 선정을 추진했다. 일방적인 정책추진으로 오랜기간 공전했던 중저준위 방폐장 건립 역사로 인한 학습효과였다.
2013년 10월부터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발족시켜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에 대한 공론화를 통해 관리방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이 결과 작년 6월 공론화위원회는 최종권고안을 마련했다. 2051년 처분장 운영을 목표로 2020년까지는 처분시설 부지 또는 이와 유사한 지역에 지하연구소를 건립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방폐장 입지 선정은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에 원자력발전소를건립이 추진되고 있는 삼척과 영덕 등지에서도 여전히 지역주민의 반대 목소리가 높다.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높은 까닭이다.
38년 가까이 상업운전의 경험이 있는 원전에 대해서도 불안감이 커 지역주민들의 반대가 적잖은 상황에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건설에 정부가 어떤 묘안을 내놓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