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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은 왜 공정하지 않을까
야구 경기 주심보다 더 고도의 전문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가령 헌법재판관과 같은 심판도 있다. 이런 심판들도 ‘집단의 압력’에 따라 편향된 판정을 내릴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은 쉽게 하기 어렵다. 그러나 A사장의 팀과 마찬가지로 ‘오심’의 피해자에게는 삭발보다는 지지자 한 명을 더 만드는 노력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최민규(didofidomk@gmail.com)
기자. 민주노동당과 청와대, SK 와이번스와 롯데 자이언츠를 취재했다. “야구는 평균이 지배하는 경기”라는 말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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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이었다. 한 지방 프로야구단 사무실에서 A사장은 화가 나 있었다. 목소리는 떨렸고, 머리카락은 짧았다. 그의 팀은 얼마 전 오심 논란을 빚은 판정으로 억울한 패배를 당했다. 그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들이 자기 팀에게 불리한 판정을 의도적으로 내려왔다고 확신했다.

“우리 같은 신생 구단 길을 들이려고 하고 있어요.”

머리카락이 짧았던 이유는, 며칠 전 이발사에게 “삭발에 가깝게 다듬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항의의 표시였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분이죠”라는 기자의 말은 그에게 전혀 위안이 되지 못했다.


심판은 규칙의 집행자


근대 스포츠는 규칙과 함께 탄생했다. 심판은 규칙의 집행자다. 야구의 경우 어떤 종목보다 복잡한 규칙 체계를 갖고 있다. 심판을 믿지 못한다면 스포츠의 존립 근거가 허물어진다. 심판도 실수를 할 수 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격언에는 오심은 랜덤하게 발생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특정 팀에 유리한 판정’이 많은 스포츠에서 오랫동안 자행돼 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실제로 그래왔다. 특정 팀의 이름은 ‘홈 팀’. 이른바 ‘홈 어드밴티지’다.

2000~2009시즌 메이저리그의 홈 팀 승률은 평균 53.9%였다. 같은 기간 일본 프로야구에선 53.6%. 한국 프로야구의 경우 2005~2014시즌 홈 팀 승률은 51.8%였다. 지역 별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수치다. 옛날부터 그래왔다. 메이저리그에서 1903년 이후 홈 팀 승률은 54.1%로 최근과 큰 차이가 없다,

야구는 점잖은 편이다. 1993~2009년 이탈리아 세리에A 축구에서 홈 팀 승률(무승부 제외)은 65.7%였다. 같은 기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64,3%. 유럽 프로축구 전체로는 60%였다. 농구의 경우 1947~2009년 NCAA의 홈 팀 승률은 69.1%였고, 1946~2009년 NBA는 62.7%였다. 그야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홈 어드밴티지는 심판이 홈 팀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리기 때문에 발생한다”


스포츠 경기 일정이 발표되면 전 세계 수많은 베팅업체들은 경기 결과에 대한 배당률을 발표한다. 배당률은 발생 확률과 반비례한다. 배당률을 만드는 오즈메이커는 여러 자료들을 이용해 경기 결과가 일어날 발생 확률을 산정한다. 이때 오즈메이커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요소가 홈/어웨이다.

홈 어드밴티지가 나타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은 기후와 지형에서부터 원정 숙소의 불편함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경제학자 토비아스 모스코비츠와 스포츠 저널리스트 존 베르트하임은 2012년 <스코어캐스트>라는 책에서 새로운 논증을 했다. “홈 어드밴티지는 심판이 홈 팀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리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는 레이더와 레이저를 이용한 투구궤적추적시스템(PTS)을 야구장에 설치하고 있다. 저자들은 2002~2008시즌 투구 데이터를 이용해 심판들이 과연 홈 팀에 유리한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내리는지를 분석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홈 팀 타자들은 원정 팀 타자들에 비해 유의미한 수준으로 유리한 판정을 받았다. 중요한 상황일수록, 판정의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홈 팀 편향은 더 뚜렷해졌다. 투수가 볼카운트 3-2에서 홈 플레이트 좌우 코너로 아슬아슬한 공을 던질 때가 그런 경우다. 이 상황에서 홈 팀 타자는 원정 팀 타자에 비해 5% 많은 볼넷과 5% 적은 삼진을 기록했다.

런던 정경대와 시카고대학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스페인 라리가 750경기에서 홈 팀이 근소하게 뒤졌을 때 인저리 타임은 평균 4분이었다. 반면 홈 팀이 근소하게 앞섰을 때는 2분으로 줄어들었다. 두 팀 간 스코어 차이가 컸을 때는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유럽 축구 모든 리그에서 원정 팀 선수는 홈 팀 선수보다 거의 매년 더 많은 옐로카드와 레드카드를 받았다.

홈 어드밴티지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스포츠 별로 고유한 수치가 나타난다. 홈 팀 승률은 야구가 50%대 초반, 미식축구와 아이스하키가 50%대 후반, 축구와 농구는 60%대다, 그리고 시기(1920년대든, 2010년대든)와 장소(한국 프로야구든, 메이저리그든)에 관계없이 이 값은 거의 일정하게 유지된다.


홈 어드벤티지의 가장 큰 이유는 ‘오심’


‘오심’을 홈 어드밴티지의 가장 큰 이유로 가정한다면 이 특징들을 설명할 수 있다. 심판의 영향력이 큰 종목일수록 홈 어드밴티지가 강하게 나타난다. 페널티킥과 레드카드 판정을 내리는 축구 심판이 야구 심판보다 승부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의 플레이 스타일은 사뭇 다르지만 심판의 역할은 거의 똑같다. 따라서 지역의 차이는 큰 의미가 없다. 스포츠 규칙은 시대에 따라 자주 변했지만, 심판의 역할에는 본질적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심판들은 왜 홈 팀에 유리한 판정을 하는 것일까. 리그 사무국이 흥행을 위해 고용 심판들에게 모종의 압력을 넣는다는 추측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음모론 대신 심리학의 ‘동조 이론(conformity theory)’을 설명 수단으로 택했다. 집단의 압력에 의해 개인이 태도와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이론이다. 홈구장은 홈 팬의 열렬한 응원이 펼쳐지는 곳이다. 관중의 태도는 심판에게 압력으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심판은 무의식중에 홈 관중이 원하는 판정을 내린다. 이렇게 해서 홈 어드밴티지가 발생한다는 게 저자들의 설명이다.

독일 분데스리가에는 육상 트랙이 깔려 있는 구장이 많다. 이런 구장에서는 관중석과 그라운드가 가까운 축구 전용구장에 비해 홈 팀에 유리한 판정이 적었다. 관중들의 압력을 적게 받는 조건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볼/스트라이크 판정은 관중이 많을 경기일수록 홈 팀에 더 유리하게 나타났다. 결국, 심판도 사람인 것이다.

그러니까, 2006년 A 사장에게 해야 했던 말은 “오심은 경기의 일부”라는 진부한 격언이 아니었다. 심판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이에 따른 편향을 늘 보인다. 규칙 문구와 리플레이 화면을 따져봐야 한 번 내려진 판정을 바꿀 수는 없다. 그의 팀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홈 관중 숫자를 늘리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A사장의 구단은 이후 길지 않은 기간 안에 홈 관중을 크게 늘리는 데 성공했다. 신흥 명문의 이름도 얻었다. 노력은 간단치 않았고, 그 와중에 갈등도 없었던 건 아니었다.

야구 경기 주심보다 더 고도의 전문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가령 헌법재판관과 같은 심판도 있다. 이런 심판들도 ‘집단의 압력’에 따라 편향된 판정을 내릴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은 쉽게 하기 어렵다. 그러나 A사장의 팀과 마찬가지로 ‘오심’의 피해자에게는 삭발보다는 지지자 한 명을 더 만드는 노력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지지자가 다수가 될 때 일개 구단의 승리 이상의 가치와 의미가 실현된다고 믿는 이들이라면 더욱.
키워드 / 태그 : 헌법재판소,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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