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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약이 아닌 규약, KBO는 왜 2017-11-19 02:31:39
MLB도 NPB도 ‘야구협약’을 갖고 있다. 그런데 NPB를 베껴 만든 KBO의 그것은 ‘야구규약’이라 부른다. ‘협약’이 아니라 ‘규약’으로 시작한 데는 무소불위의 5공 권력이 ‘산파’ 노릇을 한 시대상이 깔려있다. 하지만 이젠 권력보다 구단의 힘이 더 세진지 오래다. 더구나 이제는 선수들도 당사자로 참여하는 ‘협약(agreement)’이 필요한 시대다.
최민규(didofidomk@gmail.com)
민주노동당과 청와대, SK 와이번스와 롯데 자이언츠를 취재했다. “야구는 평균이 지배하는 경기”라는 말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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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 헌법이 있듯이, 프로야구에는 ‘야구규약’이 있다. 총 17장 176조로에 부칙 4개로 이뤄진 야구규약은 (KBO)총재의 권한, 회원사인 구단의 자격과 신규 가입 및 탈퇴, 지역 연고권, 선수 계약, 심판과 기록, 조정과 징계 등 프로야구 행정을 다룬다. 규약을 위배한 구성원에겐 강력한 징계가 내려진다.

과거 현대 유니콘스나 몇 해 전 넥센 히어로즈가 재정난 속에서도 선수 연봉은 체불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규약 55조의 응급조치 규정 때문이다. 연봉 체불 같은 ‘응급사정’ 발생 30일이 지나면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구단을 인수할 기업을 물색하거나, 선수 및 코칭스태프를 계약해제시킬 수 있다. 구단 입장에선 어마어마한 손해다.

KBO의 야구규약은 1981년 만들어졌다. 일본프로야구를 베끼다시피 했고, 일본프로야구는 역시 메이저리그의 제도를 답습했다. 그런데 이름이 다르다.

KBO는 야구규약(野球規約)이다. 하지만 일본프로야구에선 야구협약(野球協約)이다. ‘저본’이랄 수 있는 메이저리그에선 ‘내셔널 어그리먼트(National Agreement)’라고 한다. 번역을 하더라도 ‘규약’보다 ‘협약’이 더 적절하다.

미국 야구는 한국과 일본처럼 단일 규약 체계는 아니다. 비슷한 지위를 가진 여러 규칙이 종합적으로 ‘규약’을 형성한다. 어쨌든 메이저리그에서 최초의 ‘내셔널 어그리먼트’가 나온 해는 1883년이다. 최초의 프로야구팀이 등장한 해가 1869년이다. 이미 여러 프로야구단과 리그가 운영되던 상황에서 상호 협의 하에 전체적인 룰을 만든 것이다.

일본프로야구의 야구협약은 1951년 만들어졌다. 최초의 프로야구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 창단(1934년) 17년 뒤에 생겨났다. 1951년이면 미 군정기다. 연합군최고사령부(GHQ) 경제과학국장 윌리엄 머컷 소령의 권유에 따라 메이저리그 규칙을 베껴 만든 게 야구협약이었다.

 

협약보다 더 센 걸 찾다가 규약이 생겼다?

한국 프로야구 규약을 만든 인물은 이용일 초대 KBO 사무총장이다. 프로야구 창설계획을 청와대에 제출했던 ‘프로야구의 설계자’인 인물. 이 전 총장은 “협약보다는 규약이라는 단어에 보다 규제적인 뉘앙스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용어를 고쳤다”고 설명했다.

한국 프로야구와 규약의 탄생은 ‘협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청와대의 권력을 배경으로 사기업들을 압박해 만들어졌다. 미국이나 일본 프로야구와는 이 점에서 가장 다르다. 그래서 ‘협약’이 아닌 ‘규약’이 됐다.

서종철 초대 KBO 총재는 육군 장성 시절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부관으로 거느렸던 인물. 서 총재 재임 당시 구단주들이 먼저 나서 월례 골프 회동을 하기도 했다. 이 구단주 가운데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있었다.

한국은 하향식 압축 성장으로 여러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나라다. ‘협약’이 아닌 ‘규약’을 택한 프로야구도 정부의 지원을 업은 KBO의 강력한 행정력으로 일찍부터 자리를 잡았다. 이 전 총장은 “처음 청와대의 제안을 받았을 때 ‘현 국민소득에서 프로야구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부의 힘을 업고 대기업을 끌어들인다면 가능하다고 봤다”고 회상했다. 1980년대까지 한국 야구보다 다소 앞섰다는 평가를 받았던 대만 야구는 프로화 이후 열세로 돌아섰다. 대만프로야구(CPBL) 구단 예산과 선수 연봉은 KBO의 1/3 정도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한 때 성공적이었던 시스템은 발전에 질곡이 되기도 한다. 수익성에 대한 고려가 처음부터 약했던 재벌 산하 프로야구단 시스템은 모기업 재정 상황에 의존하는 취약성을 안게 됐다. ‘수익’보다는 ‘성적’을 우선한 구단 운영으로 프로야구단은 ‘돈을 벌 필요가 없는’ 회사가 됐다. ‘엘롯기’로 대표되는 프로야구 원년 창단 구단들의 프런트 역량은 모기업이 없는 넥센 히어로즈나 게임회사를 모기업으로 하는 NC 다이노스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불편한 현실이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자체 역량을 키운 구단들은 이제 KBO보다 힘이 세다. 총재나 총장이 야구 행정을 주도하는 때는 지났다. 이사회나 단장 회의의 ‘협의’에 따라 규칙이 만들어지거나 변경된다. 이름이야 어떻든 ‘규약’에서 ‘협약’의 의미가 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아직 선수는 배제돼 있다. 선수가 동의한 바 없는 규약에 따라 계약이나 징계에 대한 내용이 결정된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 점을 KBO 규약의 최대 취약성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프로스포츠라는 특수한 산업에서 일반 법체계를 준용하기는 어렵다. 당장 신인 지명이나 선수 보류권 등은 위법성이 매우 높다. 메이저리그에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단주와 선수들이 ‘베이식(basic) 어그리먼트’를 맺는다.

‘어그리먼트(Agreement)’, 즉 ‘협약’이다.

키워드 / 태그 : 야구, 규약, 협약, Agreement, KBO, 전두환, 노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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