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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과 제도 사이의 고민, 외담대 이야기 2024-04-20 23:59:54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외담대)’라는 결제제도가 있다. 외상매출채권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은행상품인데, 어음을 금융으로 그대로 옮겨온 구조에 가깝다. 그런데, “자연스러운” 외담대를 이용한 기업이 도산의 위기에 처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외담대에 의문이 생기는 이유이다.
황필(ecobana@moa.re.kr)
수학과 진화심리학, 미술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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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의 한 해 매출은 3,600조 규모이다. 어림잡아 하루에 10조. 이중 내국 기업 간 거래는 대부분 외상거래로 만기 전 대금은 금융을 통해 현금으로 만든다. 금융당국자의 말을 빌리자면 “원래 그렇게 해 온” 결제 방식인데, 원리는 목마른 자가 우물 파는 것이다. 아쉬운 쪽, 즉 거래관계상 약자가 거래로 발생하는 대부분의 비용을 책임지는 구조이다.

금융당국자들은 이것을 “시장의 원리가 반영된” “개입하기 어려운 자연스러운” 행태라고 한다. 이러한 행태를 잘 반영하고 있는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외담대)’라는 결제제도가 있다. 외상매출채권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은행상품인데, 어음을 금융으로 그대로 옮겨온 구조에 가깝다. 그런데, “자연스러운” 외담대를 이용한 기업이 도산의 위기에 처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외담대에 의문이 생기는 이유이다.


물건 팔고 빚더미에 앉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


구두씨는 15년간 성수동 구두거리에서 구두를 만들어온 장인이다. 지금은 10여명의 직원을 고용해 작은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구두씨는 올해 유명회사인 Q패션과 구두 1,000 켤레 납품계약을 맺었다. 정작 구두 부자재 공급업체들은 대부분 영세해서 현금결제를 해야 했다. 구두씨는 계약대로 두 달 후 구두를 납품했고, 대금 3,000만원을 받아야 한다.

- 첫 번째 질문, 이 대금은 언제 받아야할까?
한국에서는 결제시점이 최소 6개월 후이다. 어음의 경우 기간이 더욱 길다. 최근 법무부에서 추진 중인 어음법 개정의 목표가 180일인 점은 국내 결제환경의 어려움을 짐작하게 한다. 반면 유럽과 북미는 평균 30일~60일이 기준이다.

Q패션은 만기가 6개월인 외상매출채권을 주겠다고 했다. 어음과 달리 Q패션의 거래처인 E은행에 가면 외상매출채권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이 있다고 했다. 구두씨는 이미 수입 없이 지출만 하면서 몇 달을 버텨온 터라 현금이 급했지만, Q패션과 거래를 계속하기 위해 Q패션의 결제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3,000만원의 채권을 E은행에 등록했더니, 이를 담보로 연리 8%의 대출이 가능했다. 구두씨의 거래은행에서는 연리 6% 대출이 가능하지만, 외담대는 Q패션의 신용평가를 근거로 대출 조건을 미리 정해 둔 Q패션의 거래은행에서만 취급한다. 이자로 인해 대금이 2,750만원으로 줄어드는 결과지만, 현금이 급해 그냥 대출을 받기로 했다.

- 두 번째 질문이다. 이자를 내면서 대출 받아야 하는 것은 물품을 납품한 구두씨일까? 물품을 구매한 Q패션일까?
한국에서는 대부분 구두씨가 대출을 받는다. 금융당국은 신용도가 낮은 중소영세 납품업자의 경우 금융을 이용할 수 있는 것만으로 시혜적인 조치이며, 대출을 받을지 여부는 거래 당사자의 선택이라고 한다.

E은행에서는 만기에 Q패션이 채권을 갚으면 대출이 종료된다고 했다. 구두씨는 대출을 받아 직원들의 밀린 월급을 주고, 다른 주문 건의 구두부자재를 추가로 샀다. 6개월 후, 채권만기가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구두씨의 다른 은행 계좌의 거래가 중단되었다. 당황한 구두씨에게 E은행이 연락이 왔다. Q패션이 미상환 중이니 구두씨도 연체이며 대출 전액을 갚아야 해결된다고 했다. 구두씨는 대출약정서를 다시 펴 보았다. 주채무자는 구두씨였다.

- 세 번째 질문, 외담대는 결제인가, 대출인가? 결제제도라면 왜 구두씨가 갚아야 하는가?
한국은행은 외담대를 어음을 대체하는 현금결제제도로 분류한다. 하지만 지급과 결제의 시기가 분리되고, 그 기간 동안 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외담대를 쓰므로 거래가 완결되는 것은 아니다. 금융당국은 외담대 사용을 사안에 따라 ‘결제’ 또는 ‘대출’이라는 이중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구두씨는 은행 담당자에게 채권을 ‘담보’로 하였으니, 담보로 충당하는 것이 아니냐고 항의했다. 게다가 은행이 불과 6개월 전 Q패션의 신용평가를 근거로 실행한 대출이므로 은행도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냐고도 했다. 그러나 담당자는 대출약정서를 자세히 보라고 했다. 추가약정서에 ‘상환청구권’이 있었다. E은행이 양도받은 채권을 Q패션이 갚지 못하는 경우 구두씨가 대신 갚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 네 번째 질문, 담보에 덧붙여진 상환청구권은 연대보증인가?
은행에서는 ‘상환청구권’이 대출의 일반적 조건이라고 설명한다. 이를 감독하는 금융위나 금감원도 대출조건은 은행 자율사항이며, 어음의 원리가 반영된 안전장치라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반면, 국토부는 최근 부도가 많은 건설업계에서 외담대가 문제가 되자 ‘상황청구권이 없는 외담대’ 시행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어불성설이라는 반응이다.

Q패션은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그 결정에 참여한 E은행은 이를 거부했다. Q패션은 부도처리 되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결국, 구두씨는 E은행의 채무자가 되었고, 다른 은행과의 거래도 중단되어 부도 위기에 있다.


관행과 합리성을 혼동하는 금융당국이 만들어낸 ‘불공정 위험거래’


구두씨의 이야기는 최근 에스콰이어라는 패션업체의 부도과정에서 벌어진 실제 상황이다. 하지만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구두씨가 받은 외상매출채권이 매년 350조 규모로 발행되고 있다.

중소영세하청업체들은 물건을 납품하고도 대금은 최소 6개월 지나야 손에 쥔다(결제지연). 현금이 급하면 물건 값을 대출을 받아야하는데, 당연히 이자를 물게 된다(금융비용전가). 채권이 만기에 제대로 결제될 때까지는 불안에 시달린다(미결제위험). 기업 간 거래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나누기보다는 한 쪽이 일방적으로 부담하는 ‘불공정 위험거래’이다. 같은 구조에 결제기간이 더 긴 어음은 5배 이상의 규모로 추정된다. ‘목마른’ 입장에 처한 기업들의 상황은 짐작이 가능하리라. 이러한 기업 경영 환경에 대해 시장의 관행이라 개입하기 어렵다는 금융당국의 해명은 타당한 것일까?

2000년 한국은행은 불공정한 결제제도로 꼽히는 어음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구매기업이 거래비용을 부담하는 ‘기업구매자금대출’을 도입했다. 구매기업이 구매대금 부족 시 대출을 통해 현금으로 결제하는 제도이다. 결제가 완결되므로, 결제지연과 미결제위험은 단절되고 금융비용도 구매기업이 스스로 부담하게 된다. 그러나 도입 1년 후, 한국은행은 기업구매자금대출이 현금결제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으나, “어음발행 비중이 큰 30대 계열대기업의 경우 대부분 동일인(계열) 여신한도 등으로 인해 기업구매자금대출을 거의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를 보완하는 제도로 외담대를 제시한다. 결국, 당국이 ‘불공정 위험거래’를 개선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도, 이를 피해 불합리한 관행을 유지할 수 있는 다른 길을 터 준 셈이다.

외담대는 거래관계상 약자가 일방적으로 비용을 부담하는 결제 관행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제도의 바탕이 되는 관행이 시장에서 작동하고 있다거나 그로 인한 피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제도의 합리성을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불합리한 결제 관행을 외담대라는 제도로 옮겨와서 유지하는데 대해 고민해야 한다. 외담대를 유지할 이유가 무엇인지, 약자에 대한 보호책은 있는지, 정상화시킬 다른 방법은 없는지 따져볼 일이다.
키워드 / 태그 : 외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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