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이창원 롯데 자이언츠 대표를 만났다. 여러 이야기 중에 인상적인 말이 있었다. "저희 구단 전력은 중위권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사실 시즌 전만 하더라도 롯데는 하위권으로 분류된 팀이다. 내가 이 말을 인상적으로 받아들인데는 맥락이 있다.
전임 최하진 대표는 2013년 시무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기에 한국시리즈 진출과 우승을 일궈내야 한다" 그 전임인 장병수 대표는 "20년 동안 우승 못하는 구단은 존재 의의가 없다"고 도 했다. 그 때 프런트 관계자에게 물어봤다. "솔직히 당신들 구단 우승 전력이라고 생각하시나?" "…아니다"
프로야구단이 우승을 목표로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우승을 위해선 합리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목표 설정이 잘못되면 방법에도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조직 구성원들은 '가면'을 쓰고 서로가 서로에게 거짓말을 한다. CCTV 사건으로 대표되는 지난해 롯데의 내홍은 이런 경우 어떤 일이 터질 수 있는 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롯데의 전성기를 한 기간만 꼽자면 제리 로이스터 감독 시절일 것이다. 만년 최하위에서 일약 포스트시즌 진출 단골 팀으로 도약했다. 사직구장엔 연일 만원 관중이 미어터졌다. 마케팅 부서는 신이 났다. 이 시절 롯데는 다른 팀의 부러움을 샀다. "롯데에서 뛰어보고 싶다"는 타 구단 스타들도 여럿 있었다. 당시에 활동했던 박영태 전 롯데 코치는 "류중일 삼성 감독이 코치 시절 로이스터의 팀 운영에 대해 여러 차례 물어봤다"고 말했다. 그 때 롯데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야구를 했다. 선수도, 관중도 즐거워한 야구였다.
성적이 좋아야만 명문이 아니다. 롯데는 이 시기 타 구단과 확실하게 차별되는 색깔을 갖고 있었다. 좋은 전통이 만들어질 수 있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잘못된 분석을 했고, 여기에서 잘못된 목표가 나왔다. 롯데는 로이스터에 의해 만들어진 전력과 색깔을 '고정 자산'으로 간주했다. 여기에 좀더 '한국 야구'의 색깔을 입힌다면 우승이 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색깔'이란 결국 다른 감독들이 다 하는 방식이다.
일은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다. 계획으로는 '1+1'이었지만 결과적으론 양자택일에 가까웠다. 최 전 대표가 김시진 감독을 통해 선수단에 했던 지시 중에 이런 게 있다. "주자 없을 땐 신중하게 출루를 노리고, 주자가 있으면 공격적으로 스윙을 하라"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그 두 개가 다 되는 타자는 많지 않다. 선수들의 스윙은 갈수록 소극적이 됐다. 로이스터의 선수단 운영에 감명 받았던 선수들은 갑자기 늘어난 훈련량을 납득하지 못했다.
올해 롯데는 달라지려 하는 듯 보인다. 이 대표는 지난 23일 선수단과 프런트 가족을 사직구장에 초청했다. 조직 구성원들에게 '로열티'를 북돋우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로이스터가 만들었다가 그가 떠나자 사라진 행사였다. 이종운 감독은 타자들에게 "루킹 삼진만 당하지 않으면 된다. 실패해도 고개를 숙이고 더그아웃에 들어오지 말라"고 한다. 타자들의 스윙에선 자신감이 보인다.
자기 자리에서 노력을 하는 구성원들도 보인다. 이용훈 재활군 코치는 미국 야구 경험이 있는 이지모에게 부탁해 미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ITP(Interval Throwing Program)를 입수했다. 선발 투수와 구원 투수에게 같은 훈련투구량을 적용하는 기존방식에 의문을 가졌기 때문이다. 선진적인 운영 방식을 배우기 위해 메이저리그 구단과의 제휴도 추진 중이다. 이상욱 운영팀장은 "이름뿐이 아닌 내실 있는 제휴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 금융전문가로 일했던 바비 프라이는 2010년 피츠버그에 ‘바 마르코’라는 식당을 개업했다. 요식업은 미국에서도 대표적인 저임금 직종. 바비 프라이는 팁을 금지하는 대신 종업원 급여를 올렸다. 그러자 종업원들은 자발적으로 신메뉴 개발 아이디어를 냈다. 프라이는 "가장 성공적인 식당 운영 방법은 스태프에게 성장할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야구단 운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롯데는 한때 여기에 가까이 갔지만, 멀어졌다. 하지만 시작은 언제든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