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의 숙원 사업인 서부권 광역철도사업을 조기 착공시켜 그동안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이 아름다운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이다.” 서울 강서갑에서 4선을 지낸 신기남 의원은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며 20대 총선에 반드시 출마해야 하는 두 가지 이유로 정권교체와 함께 광역철도사업 조기 착공을 내세웠다. 비단 신 의원뿐만이 아니다. 강서구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예비후보들은 여야 없이 대부분 이 공약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월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수도권 서부지역 광역철도 사업계획은 홍대입구역(마포구)에서 화곡역(강서구)을 지나 원종역(경기도 부천시 오정구)까지 잇는 프로젝트다. 화곡역은 강서갑과 강서을 지역의 경계에 있어 강서구 공통의 관심사다. 후보자들은 이처럼 이 공약에 집착하지만 18~19대 총선 결과와 지역구 유권자 분포를 분석한 선거전문가들은 “철도 관련 공약은 강서갑 선거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본다. 신 의원의 경우 18대와 19대 총선에서 꾸준히 철도 공약(지하철 2호선 지선 연장)을 제기했지만 같은 상대와 맞붙었던 두 차례 선거에서 1승1패를 기록했다. 상대 후보였던 새누리당 구상찬 전 의원은 실현 가능성을 이유로 철도 공약에 소극적이었다. 철도 공약이 주요 변수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지역공약으로 당락 여부가 갈라진 건 뉴타운 강풍이 불었던 18대 총선밖에 없었다. 그때를 제외하고 지역공약은 여야 간 다 똑같다”는 서울지역 더민주 예비후보의 말처럼 총선에서는 공약을 통한 차별화가 사실상 쉽지 않다는 게 정설이다. 한 새누리당 예비후보는 “지역 숙원사업은 보통 서울시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서울시장이 아닌 지역구 국회의원의 역할은 크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앙SUNDAY가 정책개발 연구기관인 (사)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와 함께 역대 선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역구마다의 맞춤형 정책공약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연령, 주거 형태, 출퇴근 형태, 남녀 간 창업비율, 재래시장의 유무 등 유권자들과 지역 특성에 따라 선호하는 공약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여진 더모아 연구원은 “지역공약이 선거에서 통하지 않아 만들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유권자들의 관심이 반영된 제대로 된 공약을 못 만들어내는 후보들이 많다”고 꼬집었다.
앞서 강서갑의 경우 철도 공약의 효과가 크지 않은 이유는 세입자 비율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 지역은 2010년 기준(인구주택총조사)으로 전·월세 거주자 비율이 54.1%로 주택보유자(43.0%)보다 더 높다. 광역철도 건설로 주택가격이 상승해도 실질적으로 이익을 보는 주택보유자보다 이와 상관없는 세입자들이 많다. 이 때문에 광역철도 문제에 대한 관심이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것이다. 평균연령도 낮다. 강서갑(평균연령 39.9세)의 경우 화곡3동을 제외하고 모든 동네의 평균연령이 서울 전체(40.5세)보다 낮다. 다른 지역으로 출근하는 직장인 비중이 크고 교통체증도 심각하다. 김포와 부천 등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차량과 인근 홍대와 은평, 지역 내 마곡지구에서의 교통수요가 많아진 게 그 원인이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광역철도 건설보다 버스노선 확충 공약을 내세우는 게 효과적인 것으로 분석됐다. 현재 이 지역을 지나는 버스는 대부분 성산대교 방향으로 집중돼 있고 가양대교 쪽을 지나는 노선은 부족하다. 그래서 자가용을 이용하기 때문에 교통체증이 심해진다. 조현욱 더모아 상임이사는 “장기간 교통 불편을 초래할 수 있는 대규모 철도공사보다 교통정체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대중교통 보완 정책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는 상황이 정반대인 곳도 있다. 도봉갑 지역의 주택보유비율(55.3%)은 전·월세 거주자 비율(42.2%)보다 높다. 주택보급률(101)도 서울 전체(97)에 비해 높은 편이고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노후화된 주택과 싼 집값이다. 18대 총선에서 (득표율 격차 기준 지역구 6.2%포인트, 비례대표 11.8%포인트 차로 여당 승리) 뉴타운 공약에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당시 정치 신인이던 한나라당 신지호 후보가 야당 거물이던 통합민주당 김근태 후보를 꺾은 것도 당 정책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는 분석이다.
이 지역의 아파트는 사용연수가 15~20년이 23%, 21년 이상이 51%로 서울의 16%, 35%에 비해 1.5배나 된다. 주택 노후화로 인해 2011년 이후 전출이 전입을 넘어선 인구 감소 지역이다. 전출 사유의 50% 이상이 주택 문제였다. 이 지역 아파트 가격은 서울 시내에서 드물게 3.3㎡(1평)당 1000만원 이하인 곳이기도 하다. 결국 이 지역은 강서구와는 달리 주택가격을 상승시킬 대형 개발전략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활동 중인 더민주 인재근 의원이나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의 대표적인 공약은 복지·의료 분야이고, 수서발 KTX 노선 연장과 창동역을 지나는 의정부~안양 구간의 도시광역철도(GTX) 사업은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 이들은 모두 19대 국회에서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현욱 이사는 “주택가격 상승을 부르는 공약에 후보들이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작을에선 여성+자영업 겨냥해야
재래시장 문제는 국회의원이나 후보들의 각종 보고서와 공약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또 다른 이슈다. 선거철마다 정치인들이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가장 먼저 찾는 곳도 재래시장이다. 동작을 역시 재래시장 활성화 공약이 나오는 지역 중 한 곳이다. 하지만 동작을의 경우 이런 공약의 효과는 낮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지역 재래시장은 상도1동과 상도4동에 점포수가 각각 12개, 15개로 규모가 작은 편이다.
반대로 이 지역은 모든 동네에서 창업자 중 여성 비율이 40%에 이른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당역 유흥가와 이어진 사당1동은 음식료업과 주점업이, 사당2동과 상도1동의 경우 주택가 상주인구로 인해 식당업과 미용업 등이 발달했다. 반면 대형 호텔이나 백화점,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없다. 자영업자를 위한 상업시설의 활성화 공약을 내걸면 기대보다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18대 대선에선 야당을 10%포인트 더 지지했던 동작을 지역이 18대 총선부터 지난해 재·보선까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 후보를 선택한 것은 지역 특성을 겨냥한 공약의 효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새누리당은 19대 총선과 재·보선에서 지역상권 활성화와 사당이수 상업지역 확대를 대표공약으로 내걸었다. 재·보선에 나섰던 나경원 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로 나선 거물 노회찬 후보를 꺾은 데엔 여성창업자가 많은 동작을에서 ‘엄마’ 콘셉트가 통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래시장 공약이 통하는 곳은 양천갑으로 나타났다. 양천갑에는 양천구에 있는 재래시장 10개가 모두 몰려 있다. 10개 중 6개가 건물형이 아닌 골목형으로, 점포수만 572개에 달한다. 1819대 총선에서 재래시장 관련 공약을 제시한 후보는 19대 총선 민주통합당 차영 후보가 유일했다. 결과적으로는 낙선했지만 지역구 내 재래시장이 있었던 목2동, 목3동, 목4동에선 차 후보가 승리했다.
노령화 심화 관악을에선 노인 일자리 정책
야당의 절대 우세 지역이면서도 탄탄한 새누리당 고정 지지층이 있는 관악을 지역에서는 노인 일자리 정책의 파급력이 가장 클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4·29 재·보선의 경우 야권이 이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당락이 바뀌었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야권 지지도가 높은 이 지역에서 새누리당 고정표를 능가할 만큼의 표를 모으기 위해선 투표율을 높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유권자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정책을 통해 투표장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악을의 두드러진 특성은 심각한 노령화다. 이 지역 노령화 지수는 대부분 100을 넘는다. 서울의 노령화 지수가 97인 점을 감안하면 노령화가 심한 편이다. 특히 삼성동·신원동·서원동은 150을 넘는다. 관악구의 재정자립도가 서울시내 25개 구 중 22위인 만큼 경제상황이 낙후된 데다 2014년 기준으로 서울 독거노인(27만3190명)의 25%, 저소득노인(3만3382명)의 15%가 관악을에 거주한다. 하지만 지난 재·보선에서 노인 일자리 정책을 내건 야권 후보는 없었다. 반면 당선된 새누리당 후보는 돌보미 사업과 주거비 지원 등 독거노인 맞춤형 공약을 내걸었다.
강동을의 과거 투표행태 역시 관악을과 비슷하게 나타났다. 18대와 19대 총선(지역구), 2014년 지방선거(서울시장, 구청장)에서 여당은 투표율과 상관없이 4만 표 안팎의 득표를 했지만 야당 표는 2만8000여 표에서 5만3000여 표까지로 진폭이 컸다. 이 지역은 인구 구성보다는 거주 형태에서 차별화된 특성을 보였다. 강동을은 둔촌1동을 제외한 모든 동의 주택보급률이 서울 전체 평균(97)에 비해 크게 낮다.
오래 거주한 주민이 많다는 것도 특징이다. 특히 강동을의 천호동권은 25년 이상 거주한 주민들의 비율이 34.4%나 된다. 이 지역에 오래 거주하는 이유를 묻는 설문에선 ‘옛날부터 살아와서’(32.2%)와 ‘경제적 능력에 맞춰’(26.5%)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한마디로 부모와 자녀 세대가 함께 오랫동안 살아와 유대감이 강한 전통적인 서민 동네로 분류된다. 그래서 19대 총선에서 ‘1% 부자만 잘사는 나라에서 99% 서민도 잘사는 나라로’라는 민주통합당 심재권(현 지역구 의원) 후보의 캐치프레이즈가 통했다는 분석이다. 조현욱 이사는 “유권자와 동질성을 느끼게 하는 심리적인 요인이 중요한 지역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새누리당 강동을 당협위원장인 이재영 의원이 캐치프레이즈로 ‘어깨동무’를 내건 이유이기도 하다. 이 의원은 “어깨동무를 하기 위해 키가 큰 사람은 허리를 숙이고, 키가 작은 사람은 까치발을 서서 키를 맞춰줘야 하듯 서로 배려하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새누리당 내에선 윤석용 전 의원이 ‘지하철 9호선 연장한 뚝심일꾼’임을 부각하며 이 의원과 경합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