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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25년의 싸움…'12·28 합의'에도 해결은 요원
특히 일본 측은 합의 이후에도 "위안부 강제연행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위안부 합의 55일만인 2월16일에는 스기야마신스케 외무성 외무심의관이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가 열린 스위스 제네바로 직접 가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라며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강제연행은 완전한 날조"라고 주장했다.
the300/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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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기림일 법안은 움직이는 이슈다. 한국과 일본 간 최대 외교 현안이 바로 위안부 문제이고 법안 논의 수위도 이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일간 위안부 문제는 지난해 '12·28  합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합의를 체결한 지 115일이 넘도록 위안부피해자 재단 등 후속조치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으며 소녀상 이전과 일본측의 끊임없는 역사왜곡 등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양국이 지난해 12월28일 체결한 위안부 합의안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의 뜻을 표하고,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하는 재단에 10억엔을 출연키로 했다. 또 우리 정부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과 관련, 관련단체와 협의해 적절한 해결을 위해 노력키로 했다.

  양국은 이번 합의가 불가역적임을 확인하고,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상호비방을 삼가기로 뜻을 모았다. 

  위안부 강제 동원과 관련해 '일본 정부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직접적인 표현이 포함됐고 일본 정부 예산으로 배상적 조치를 실시한다는 측면에서 이번 합의가 과거에 비해진전을 이룬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합의 이후 소녀상 철거나 위안부 동원 강제성 인정 등과 관련한 일본측 태도에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 잇따르며 국내에서는 위안부 재합의 요구가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교도통신은 위안부 합의 직후 "(소녀상)철거를 자금 거출의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아베 신조 수상의 '강한 의사'를 반영한 것"이라며 소녀상 철거가 위안부 합의의 조건이었다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합의 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1월18일 일본 국회에서 "이번 합의에 의해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유형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라며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또 다시 부인했다. 합의안에 '법적 책임'을 명시하지 않아 문제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일본 측은 합의 이후에도 "위안부 강제연행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위안부 합의 55일만인 2월16일에는 스기야마신스케 외무성 외무심의관이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가 열린 스위스 제네바로 직접 가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라며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강제연행은 완전한 날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일본의 '물타기'에 지엽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정면대응하지 않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일 유엔 인권이사회 연설에서 북한 인권 문제만 집중 거론했을 뿐 위안부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호 비방을 자제한다'는 합의를 이행하겠다는 의도지만 국내 비판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소녀상 이전과 관련 정부는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사아안이 아니다"라는 기존 입장에서 지난달 24일 "정부에서도 소녀상 문제가 국내적으로 갖는 민감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관련 단체들의 의견을 경청해 나가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그러나 일본측은 위안부 소녀상 이전 문제를 위안부 합의 후속 조치와 연관시키는 태도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지난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물으려는 청구인들을 배제한 채 일본 정부와 합의를 했고, 합의 내용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절차적 참여권과 알 권리를 침해했다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리해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5일 위안부 합의 100일을 맞은 정부 평가에서 "재단설립 등 준비를 착실히 진행 중"이라며 "조속한 시일 내 재단사업을 통해 합의의 기본원칙과 목표인 피해자분들의 명예와 존업이 회복되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다만 재단설립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시한을 정하기보다는 합의 내용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필요한 준비를 충분히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정부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결성되고,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일본에게 진정성 있는 사죄를 받으려고 기나긴 싸움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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