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역사교과서’라 부르던 ‘균형교과서’라 부르던 당정청이 추진하고 있는 사안의 본질은 국사교과서의 국정교과서화다.
이는 세 가지 층위로 분석할 수 있다. 첫째, 이십여 년 째 이어지고 있는 보수진영의 ‘역사바로세우기’의 결정판이다. 박정희 재평가와 이승만 재평가에 이어 자신들의 역사 해석을 국가의 ‘정본’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둘째 박근혜 대통령의 ‘숙원’이다. 박 대통령은 다시 공개석상에 나오기 시작한 80년대 후반부터 정치권에 투신한 90년대 후반까지 ‘아버지의 재평가’를 자신의 존재이유로 삼아왔다. 지난 대선 직전 인혁당 및 유신에 대한 사과가 있었지만 박 대통령 입장에서 그 발언들은 ‘와신상담’에 불과했다.
셋째, 여권 및 보수층을 다시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현실정치용 기제다. ‘경제민주주의’나 ‘복지’같이 이미 대통령 취임 때부터 기각한 의제들 외에 ‘창조경제’ ‘통일대박’도 임기 내에 난망한 상황에서 ‘(구)통진당 해산-국정교과서 발행’으로 이어지는 흐름의 추동은 박 대통령이 하고 싶은 것인 동시에 잘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 흐름은 일단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여권을 하나로 묶으면서 당청 갈등에 불안감을 느끼던 지지층에게도 “역시 우리 대통령이다”는 만족감을 줄 것이다. 이념갈등이 심화되면 경제사회적 갈등은 가려질 수 있다.
또한 우호적인 한중관계, 남북 갈등 관리 국면은 현 정부가 ‘이념·실용 병진 노선’을 추진하는 듯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북한이 ‘경제·국방 병진 노선’에 매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당장 이번 주 박 대통령은 교과서 폭탄을 던져놓은 채 미국으로 건너가 한미정상회담을 진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기획은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한계와 위험요인이 너무 많다. 첫째 ‘헬조선에서 못 살겠다’는 분루에 대한 답이 ‘국정교과서’라는 것은 누가 봐도 말이 안 된다.
둘째 “형식은 국정교과서지만 균형있는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약속이 성공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 새 교과서 여기저기에서 분명히 흠결과 갈등요인이 발생할 것이다.
셋째, 정치 로드맵과 맞물리면 국정교과서는 시한폭탄이 될 것이다. 당정청의 계획대로라면 2016년 하반기에 새 교과서가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2017년 봄부터 학생들이 그 교과서로 배우게 된다. ‘천하의 박근혜’라고 해도 피할 수 없는 레임덕 시기다.
여권 차기 후보는 박 대통령과 차별화를 해야 한다. ‘이념적 경직성 탈피’가 가장 손쉬운 방법일 것이다. 새 교과서는, 2016년 말~2017년 초 각 당의 대선 후보 경선 시기에 여야가 아니라 여권 내부 갈등의 도화선이 될 것이다.
야당과 지지자들 입장에서 교과서 파동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저지시키기 위해선 전략적 시야와 기획이 필요할 것이다.
만일 야권이 ‘수구보수 vs 진보개혁’의 전선을 긋고 모든 사안들을 블랙홀처럼 이 전선에 인입시킨다면 여권은 속으로 쾌재를 부를 것이다. 노동‘개혁’저지를 연동시키는 것도 좋은 수가 아니다. ‘비정상 vs 정상’, ‘이념집단 vs 글로벌스탠다드'식의 구도를 통해 우군을 최대화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동아일보>나 <중앙일보>도 국정교과서에 부정적인 현실을 지렛대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방어선을 지키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상황을 오판해서 대회전에 나선다면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진도를 빼야 한다. 어찌됐건 혁신위는 사실상 그 임무를 다했다. 이제는 당 혁신안과 구체적 공천 방안을 확정해야 할 때다. 여러 위원회에 책임을 떠넘기고 시간만 보내는 것은 최악이다. 선출직 평가위원회든 전략공천위원회든 앞으로 구성될 위원회는 ‘지침’에 따라 ‘집행’을 하는 곳이 돼야 한다.
비주류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방안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말하면 된다. 문재인 대표는 마치 모든 분란이 종결된 것처럼 할 것이 아니라 예고했던 ‘뉴파티 비전’을 밝혀야 한다.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은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치열한 공방을 벌이더라도 시한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