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이 익숙해지는 안보, 과학기술분야에서 거듭되는 인사 잡음, 달걀 파동, 여당 대표와 여권 전체의 애매한 관계 등 문재인 정부 이곳저곳에서도 난맥상이 드러나고 있다.
이 외에도 이제 모습을 드러내는 사안들은 만만치 않다. 기간제 교사 vs 정규직 교사 vs 임용시험 준비생 간 갈등으로 대표되는 정규직-비정규직 문제, 수능 절대평가제 등 입시 문제, 주택 시장을 임대 위주로 재편하려는 정부와 ‘실수요자’의 갈등으로 드러나는 부동산 문제.
이 같은 사안들이 특히 그렇다. 계층-세대 갈등, 사다리 걷어차기 논란, 이념, 실력 등이 혼재된 큰 문제들이다. 갑과 을이 힘겨루기를 해야 할 문제가 을과 정부의 갈등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갑은 팔짱끼고 있는 가운데 을과 병이 피터지게 싸우는 케이스도 있고, 모두가 패배자라고 생각하는 사안도 있다.
견조한 경제 성장과 같은 기반, 때로는 지지층의 비판을 감수할 수 있는 결단력, 현실적 해법을 고르고 풀어나갈 수 있는 실력, 전반적인 국정운영 지지율 등 모든 것을 갖춘다고 해도 쉽지 않은 문제들이다.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이 같은 문제에 직면할 경우 ‘(정치적 반대편에 있는) 적폐세력’을 걸림돌로 지목해 이념갈등을 불러일으켜 문제를 덮거나, 갈등 폭발의 시기를 뒤로 미루는 정책 수단을 선택하거나,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며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어주기 일쑤였다.
문재인 정부 역시 같은 과제와 유혹에 직면할 것이다. 또한 ‘오프닝’ 이후에는 성공의 역설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소통 문제, 전 정부의 문제점 등을 상당 부분 성공적으로 해결한다면 ‘기저효과’는 사라지기 마련이다. 실제 과제들을 해결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전략적으로 전 정부나 전 전 정부의 문제점들을 오래 끌고 간다면 ‘개혁 피로감’에 따른 역효과 위험은 점점 커질 것이 분명하다.
이런 조짐들이 나타나는 데도 불구하고 지지율은 굳건하다. 문재인 정부가 지금까지는 야당 복이 많은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반대편을 대변하는 튼실한 야당이 존재해야 정부의 부담이 줄어든다. ‘대의 민주주의’는 보수파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다.
지지 세력을 유지, 고양하기 위해 직접 민주주의가 더 효과적일 수 있겠지만 반대진영과 대화, 갈등을 조정하는 데는 대의 민주주의가 필수적이다. 이전 정부들의 전례를 살펴보면 납득하기 어렵지 않은 명제다. 일부 지지자들이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국민전체를 대변한다”고 사고하는 듯한데, ‘일부’만의 생각이 아니라면 위험하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드디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일단 박근혜 전 대통령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문재인 정부를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그가 모를 리가 없다. 박 전 대통령 측이 너무나 무력한 것은 홍 대표에게는 천만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지방선거, 총선을 바라보는 정치인/정치예비군들도 동일한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리더십을 발휘하는가는 홍 대표의 몫이다.
국민의당은 결국 ‘안철수 체제’가 들어섰다. 안 대표 입장에서는 정치입문 이후 이제야 처음 ‘책임감 있게’ 당을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대표 당선 후 일성에선 예의 ‘스탠스주의’를 드러냈다. 자유한국당과 문재인 정부의 가운데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드러났다는 이야기다. 이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애매함’ ‘수동적’이라는 딱지는 더 강해질 것이다. 그럴 경우 귀결점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선거제도 개편, 개헌에 앞장서겠다는 것은 좋은 전략이다. 안 대표 본인이나 국민의당의 이해와 한국 정치 전반의 이해 간 씽크로율을 높일 수 있는 의제다. 자기 정치 생명을 걸어봄직하다.
자유한국당이나 국민의당에 비해 오히려 더 어려운 곳은 바른정당과 정의당이다. 특히 정의당은 특단의 전략적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