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암호화 화폐를 ‘가상징표’로 규정하는 등 거친 표현을 사용하면서 이에 대해 ‘규제’를 넘어 ’금지‘를 예고했다. 박 장관은 ’관계 부처와 협의‘를 거친 것이라며 자신 있게 말했지만 같은 시간 경제부총리는 입을 다물었고 몇 시간 후 청와대는 “정해진 것은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 사안은 국무조정실(총리)이 책임진다고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암호화 화폐의 효용 혹은 부작용에 대한 논란과 별개로 연속된 이 몇 장면은 좋지 않다. 정제되지 않은 발언들은 정부가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거나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을 강하게 남겼다. 법무부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이 사안에 대한 정부의 인식을 드러내려고 한 것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켰다.
정치적으로 보면 이 사안은 갈등이슈는 아니다. 여야 정치권은 대체로 ‘부작용이 심각하다. 명료하게 규제를 해야겠지만 산업적 측면, 사회적 측면을 고려해야 하니 금지로 갈 것은 아니다‘는 정도의 공통된 인식을 갖고 있다.
따라서 오히려 ‘협치’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정치권이 권한과 책임을 상당 부분 공유할 경우 정부 역시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제 이 사안에 대한 책임과 부담은 모두 정부의 것이 돼버리는 형국이다. ‘절대평가’의 장에 들어섰다. 실력과 권한을 가진 총괄 책임자(Czars)가 필요한 시점인데, 청와대가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나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을 적임자로 생각하고 있다면 전망은 어둡다. 이 사안에 대해선 야당의 ‘자살골’로 인한 반사이익을 거두기도 어려울 것이다.
14일(일요일) 조국 민정수석의 권력기관 개혁 발표 역시 위험요소가 있다. 무소불위나 다름없는 검찰과 국정원의 권력을 제어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국회 사개추위가 출범하자마자 청와대가 국민을 상대로 선(先)-발표를 한 것은 합의안 도출의 가능성을 오히려 좁히는 것이다. 청와대 역시 이 같은 구조를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명분과 지지율의 우위로 강하게 압박해나가겠다는 복안을 수립한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오히려 하중을 늘려서 힘을 키우겠다는 것.
리스크를 각오한 과감한 발표라면, 구체적 그림도 뒤따라야 할 것인데 청와대는 구체적 사안에 대해선 ‘여야가 논의해서 결정해야 할 문제’, ‘개헌 사항’, ‘관계기관들이 협의해서 결정해야할 문제’ ‘행안부 등 범정부 차원에서 논의를 해나갈 것’ 등의 답변으로 갈음했다.
이 사안은 다소 상대평가의 영역이 포함되는 것이다. 하지만 ‘관계기관들의 협의’, ‘행안부 등 범정부 차원의 논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들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검찰이나 국정원을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반개혁적 기득권’으로 규정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정권 2년차다.
부동산 문제 역시 절대평가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4월에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시행 시점에 일부 고위급 인사들의 부동산 보유 현황은 상당한 정치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의 다양한 의혹이 드러나고 있는 등 ‘상대평가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점점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는 다른 층위가 돼가고 있다.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