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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크의 정치학 2017-11-19 02:33:03
1990년대의 많은 오른손 타자들은 송진우나 이상훈과의 대결에서 자신들이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스타 투수와 평범한 타자의 대결이라면 심판은 넓은 스트라이크존을 적용해 ‘적극적으로’ 스트라이크 판정을 한다. 많은 이들이 그걸 원하기 때문이다. 또한 관중석과 TV 앞에 앉아 있는 팬 다수가 이승엽이나 앨버트 푸홀스가 스윙을 하는 걸 보고 싶어 한다. 그 결과로 스트라이크존이 좁아지면 투수는 강타자가 더 치기 쉬운 곳으로 공을 던져야 한다.
최민규(didofidomk@gmail.com)
기자. 민주노동당과 청와대, SK 와이번스와 롯데 자이언츠를 취재했다. “야구는 평균이 지배하는 경기”라는 말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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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크!”, 그 가상의 공간

한국 프로야구 사상 가장 위대한 왼손 투수는 누구일까. 은퇴한 선수를 대상으로 한다면, ?그러니까 류현진은 제외한다는 얘기다- 이 주제에선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팬이 할 말이 많다. 한화에는 송진우와 구대성, LG에는 이상훈이 있었다. 피 끓는 팬이라면 왜 송진우나 구대성, 혹은 이상훈이 위대한지에 대한 이유를 100개쯤 갖고 있을 것이다.

현역 시절 이들을 자주 상대했던 한 타자는 그들이 대단한 투수였다는 점에 이견을 달지 않았다. 하지만 덧붙인 말이 있었다. “심판 덕이 없었다고 보긴 어렵죠. 바깥쪽 볼이 스트라이크로 판정된 경우가 많았거든요.” 오른손 타자에게 왼손 투수의 바깥쪽 꽉 차는 직구는 가장 치기 어려운 공이다.

야구 심판에게 가장 어려운 기술은 스트라이크와 볼의 판정이다. 야구라는 경기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문제가 없었다. 초창기 야구에서 타자는 세 번 헛스윙으로 아웃되기 전까지는 무한정 볼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경기 시간도 무한정 길어지는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타자가 ‘쳐야(스트라이크)’하는 공을 치지 않으면 헛스윙과 같은 페널티를 주는 규칙이 만들어졌다. 이른바 ‘콜드 스트라이크(Called Strike)’다.

‘쳐야 하는 공’의 기준을 만들기 위해 스트라이크존이 생겨났다. 스트라이크존은 규칙으로 규정돼 있지만 실제 야구장에는 ‘스트라이크존’이라 부를 수 있는 물건이 없다. 주심의 머릿속에 있는 가상의 입체다. 그런 만큼 오심의 가능성은 늘 있다.

 

판정을 하지 않는 심판, 책임을 피하려는 심판

하지만 ‘오심’보다 문제가 되는 게 있다. ‘편향’이다.

볼카운트 0-2에서 스트라이크 콜이 나오면 타자는 아웃된다. 반면 3-0에서 투수가 볼을 던지면 타자는 1루로 출루할 수 있다. 판정 하나로 출루와 아웃이 결정되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심판들은 어떻게 판정을 할까.

투수가 스트라이크존 좌우 코너에 걸치는 아슬아슬한 볼을 던졌다고 하자. 스탠퍼드대에서 이뤄진 한 연구에 따르면 볼카운트 0-2에서 이 공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은 비율은 3-0에 비해 19% 줄어들었다.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 기자 존 베르트하임은 같은 주제에 대해 보다 시각화된 결론을 제시했다. 볼카운트 3-0에서 심판이 실제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린 영역은 0-2에 비해 1,200㎠ 넓었다.<그림 참조> 두 연구가 공통적으로 내리는 결론은 “심판은 중요한 상황에서는 적극적인 판정을 유보하는 경향이 있다”이다. 0-2에서의 삼진 아웃과 3-0에서의 출루가 자신의 판정이 아닌 선수들끼리의 대결에서 결론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심판의 판정은 네 개 카테고리로 나눠볼 수 있다. 1) 올바른 판정 2) 틀린 판정 3) 올바른 불판정 4) 틀린 불판정. 미국 5대 스포츠와 10개 리그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심판들은 4)보다는 2)에 더 신경을 쓴다는 사실이 통계적으로 입증된다. ‘틀린 판정’을 내리기보다는 ‘틀린 불판정’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른바, ‘부작위 편향’이다.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 책임질 일도 없다’는 생각에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 야구 기자들은 이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포스트시즌 취재를 시작하기에 앞서서는 ‘10월에는 스트라이크존이 좁아진다’고 머리 속에 입력해야 한다.

부작위 편향이 생겨나는 이유는 책임이 따르는 행동을 피하려는 사람의 심리 때문으로 설명된다. 부작위 편향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야구 경기에서는 심판의 판정이 아닌 투수와 타자의 대결 결과로 아웃이나 출루가 결정되는 게 더 멋지다.

그러나 부작위 편향은 랜덤한 오심보다 더 위험하다. 오심은 예측불가능하다. 한 팀이 오심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모두가 공평하게 오심의 피해와 덕을 본다. 하지만 부작위 편향은 예측가능하며, 늘 특정 상황과 특정 대상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때로는 부작위가 작위보다 더 큰 손실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똑똑한 누군가는 부당 이득을 취할 수도 있다.

 

심판의 편향, 누가 이득을 보나

부작위 편향에서는 ‘강자’가 이득을 본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공정함’이라는 스포츠의 덕목에 위배된다.

볼카운트 0-3에서 스타 타자는 평범한 타자보다 더 좁은 스트라이크존을 적용받는다. 역시 통계적으로 입증된 결과다. 심판들이 스타를 편애해서가 아니다. 관중석과 TV 앞에 앉아 있는 팬 다수가 이승엽이나 앨버트 푸홀스가 스윙을 하는 걸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심판은 투수나 야수가 아닌 자신이 이들에게 아웃을 선고하는 걸 원치 않는다. 그 결과로 스트라이크존이 좁아지면 투수는 강타자가 더 치기 쉬운 곳으로 공을 던져야 한다.

반대로 스타 투수와 평범한 타자의 대결이라면 거꾸로 심판은 넓은 스트라이크존을 적용해 ‘적극적으로’ 스트라이크 판정을 한다. 많은 이들이 그걸 원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의 많은 오른손 타자들은 송진우나 이상훈과의 대결에서 자신들이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야구장 밖의 현실에도 '강자'들은 있다. 정부의 정책이나, 국회의 입법을 야구식으로 ‘3-0 상황’과 ‘0-2’ 상황으로 나눠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키워드 / 태그 : 야구, 부작위, 송진우, 구대성, 이상훈,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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