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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는 민주주의가 없다?” 2017-11-19 02:33:20
MB 정부 시절 두 차례에 걸친 정부측 인사의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취임 기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KBO 총재는 그동안 정치적 자리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구단들은 ‘낙하산 총재’를 퇴임시키고, 정관에 따라 총재 선출권을 행사했다. KBO와 구단들이 정부에 대해 일으킨 반란이었고 ‘하극상’이라 불릴만한 큰 사건이었다. ‘법대로’ ‘규정대로’를 ‘하극상’이라 몰아붙인다면 “야구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는 비판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다. 여의도 정가의 ‘하극상’을 다시 돌아본다.
최민규(didofidomk@gmail.com)
민주노동당과 청와대, SK 와이번스와 롯데 자이언츠를 취재했다. “야구는 평균이 지배하는 경기”라는 말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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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정가에서는 특정 정치적 갈등을 ‘하극상’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프로야구에도 ‘하극상’으로 불릴 만한 사건이 많다.

 

프로야구 감독은 ‘선수 장악력’이 중요하다.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든 권위를 확립해야 한다.

프로야구 최고 명장으로 꼽히는 김응용은 아랫사람의 도전을 용납지 않았던 인물이다. 김일권, 이순철, 장채근, 김기태 등등 그의 권위에 도전했던 선수는 어김없이 팀을 떠나야 했다. 다만, 여기에는 팀이 잘 나가고 있을 때도 늘 새로운 선수를 준비하는 그의 운영 방식이 결합돼 있었다. 김성근 감독은 ‘만기친람형’ 감독이다. 그와 철학이 다른 코치는 함께 일하기가 매우 어렵다. 프로야구 첫 외국인 감독인 제리 로이스터도 비슷했다. “코치는 감독의 야구를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전설적인 야구 기자 이종남은 메이저리그 감독 열전을 다룬 <The Men in the Dugout>(레너드 코페트 저)를 번역하며 제목을 <야구에는 민주주의가 없다>고 달았다. 권위가 중요한 만큼 하극상 사건도 적지는 않았다.

감독과 선수 외에 선배와 후배, 감독과 코치, 구단과 선수, 구단과 감독 사이에서도 ‘하극상’, 또는 비슷한 갈등이 빚어진 사례는 많다. 하지만 프로야구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하극상’은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구단들이 정부에 대해 일으킨 반란이다.

 

2008년 KBO 총재의 사퇴

2008년 12월 16일 신상우 제 16대 KBO 총재는 사퇴 의사를 밝힌다. 임기가 3개월 넘게 남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1년 전인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8년 만에 정권을 탈환했다. KBO 총재는 ‘정치적인’ 자리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인 신 총재의 취임에는 청와대 모 행정관이 역할을 했다는 것이 야구계의 유력한 설이었다. 신 총재가 사퇴 의사를 밝히기도 전에 차기 총재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했다. '낙하산 총재'에 신물이 난 구단들은 대놓고 '이제 그만 나가시죠'라는 태도였다.

17대 총재 역시 청와대의 몫인 줄 알았다. 가장 유력한 인물은 ‘YS의 입’으로 불렸던 박종웅 전 의원이었다. 1년 전 대선 당시 YS는 불편한 관계였던 MB의 손을 들어주며 빚을 지웠다. 정재계에 발이 넓은 이용일 초대 KBO 사무총장은 “YS가 직접 MB에게 박 전 의원을 도와주라고 말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당시 야인 신분이던 박 전 의원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KBO 총재 자리에 대한 희망을 숨기지 않았다.

 

프로야구 8개 구단의 총재선출은 ‘하극상’이었는가

그러나 프로야구 8개 구단은 ‘반란’을 감행한다. 신 총재 사퇴 당일 구단 사장들은 비공개 회의를 열고 유영구 명지의료재단 이사장을 전격 추대하기로 했다. 학원 재벌 2세인 유 이사장은 구본무 LG 트윈스 구단주와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메시지는 명확했다. 정부와 청와대는 프로야구 총재 인사에 손을 떼라는 것이다.

문광부는 격노했다. MB가 직접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질책했다는 말도 나왔다. 정부의 압박에 시달린 유 이사장은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구단, 혹은 구단주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여론도 정부에 비판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정부에는 명분이 없었다. KBO 정관에 따르면 총재는 구단 사장으로 이뤄진 이사회에서 3/4 이상 동의로 받아 추천하며, 구단주 총회에서 3/4 이상 찬성으로 선출된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해서는 ‘보고 의무’만 있다. 처음부터 정부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결국 유 이사장은 2009년 2월 24일 KBO 총재로 선출된다.

문광부는 위에서 치이고, 아래에서 받힌 형국이었다. 그래서 ‘소심한’ 복수를 했다. 유 총재 취임 이후 KBO 이사회가 사무총장으로 이상국씨를 내정하자 세 번이나 ‘승인’을 보류한 것이다. 정확히는 보고 서류를 제출하자 ‘서류 보완 지시’를 세 번 내렸다. 이상국씨는 8~10대 KBO 사무총장을 지낸 수완가로 DJ 정부 시절 인맥으로 SK와 KIA의 프로야구 참여에 공을 세웠다. 총장 재직 시절 비리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하지만 유 총재 추대 과정에서 역할을 한 게 결정적으로 ‘미운 털’이 박힌 사유였다.

시간이 흘러 2010년 5월 2일, 유 총재는 명지학원 재단 비리로 수사를 받던 중 결국 총재직을 사퇴한다. 그 뒤 한동안 KBO 총재는 공석이었다. 이때 새 총재 후보로 갑자기 부각됐던 인물이 있었다. 2009년 논란 당시 문광부 제1차관이던 신재민씨였다. 신 전 차관은 2010년 차관에서 장관으로 내정됐지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낙마했다.

당시 신 전 차관과 전화 통화를 했다. 이때 그는 “2009년에 내가 ‘KBO 총재 인선에 대해 정부가 외압을 행사해선 안 된다고 막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무총장 반려 건에 대해선 딱히 해명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 전 차관도 총재가 되지는 못했다. 구단들은 2011년 이용일 초대 총장을 총재 직무대행으로 선출했고, 이후 LG 가문의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19~21대 총재로 재직 중이다. 당시 신 전 차관의 총재 희망이 정권의 뜻이었는지 ’자가발전‘에 가까웠는지에 대해선 해석이 엇갈린다.

 

‘법대로’ 권한행사는 프로야구의 발전

MB 정부 시절 두 차례에 걸친 정부측 인사의 KBO 총재 취임 기도는 실패로 끝났다. 제도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나 청와대는 KBO 총재 선출권이 없다. 그리고 나중에 일어난 일이야 어떻든 결국 정부도 '권한 없음'을 인정했다.

프로야구 출범에 제5공화국의 정치적 의도가 작용했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총재 선출에 대한 기본적인 권한 정도는 ‘법대로’ 되고 있다. 프로야구가 그만큼 발전했다고 평가해도 좋다. 그런데, 지금 정부에서 MB 시절의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야구계가 다시 결기를 세울 수 있을지에 대해선 장담 못하겠다.

키워드 / 태그 : 야구, 민주주의, 하극상, KBO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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