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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베스트 후속은 글로벌창조? 소프트웨어 ‘육성’, ‘양성’이야기는 그만! 2024-04-17 17:49:49
월드베스트소프트웨어 후속으로 글로벌창조소프트웨어에 4천억 지원하겠다는 정부. 소프트웨어는 정부에 의해 ‘육성’이나 ‘양성’되는 것이 아니다. 단 기간의 성과 위해 이미 잘 하는 곳을 건드리지 말고 시장을 키우려는 노력 기울여야 한다. ‘50만 명 3D프린팅 교육’, ‘일인일앱’이 웬 말인가?
한상기(steve3034@gmail.com)
소셜컴퓨팅 연구소장, 세종대학교 ES 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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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간 제목만 바뀌는 SW육성책

지난 달 29일 국무총리 주재 ‘국가 정책 조정 회의’에서 미래부는 ‘SW 중심 사회 확산 방안'을 발표했다. 또한 대통령에 대한 6개 부처 공동 신년 업무 보고에서는 ‘역동적인 혁신 경제'를 위한 IT 산업과 소프트웨어 산업의 역할이 강조됐다.

정부 부처가 정책적 화두를 소프트웨어에 두었다는 면은 긍정적이긴 하다. 하지만 여전히 관습적인 정책에 숨이 막힌다. 바로 ‘육성’과 ‘양성’이라는 키워드들이다. “글로벌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을 육성하고, 전문가나 관련 인력을 양성한다”는 정부 주도형 정책 목표는, 내 기억으로는 수십 년간 제목만 바꿔가며 제출됐다.

어쨌든 미래부는 세계적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을 2014년 20개에서 2015년 25개, 2017년 50개까지 육성한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은 과연 육성이 되긴 되는 것일까? 해당 기업의 기준은 연 매출 100억 원, 수출 100만 달러 이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기준을 충족시켜도 시장에서 보면 매우 작은 기업들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기업들이 될 것 같다. 100만 달러면 10억 원 수준의 수출 금액인데, 이런 회사를 글로벌 전문 회사로 얘기하니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내가 생각하는 글로벌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은, 예를 들면 가트너의 매직 쿼드런트 보고서의 한 분야에 주요한 기업으로 선정되는 수준이다. 여기에도 리더, 챌린저 등의 위치가 있지만, 적어도 니치 플레이어 수준에는 들어가야 할 것이다. 최근 국내 기업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가 ‘웹 콘텐트 관리 부문'에 등재된 사례가 바로 글로벌 시장에서 전문 기업으로 인정받은 증거라 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기업이 정부의 육성 정책에 의해 만들어지냐는 점이다. 내가 아는 한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가 이런 위상에 올라설 때까지 정부의 육성 지원 정책이 도움이 된 바는 거의 없다. 오히려 여러 부족한 제도와 불합리한 관행 때문에 힘들어 했었다.

정부는 글로벌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과거 ‘월드 베스트 소프트웨어(WBS)’ 프로젝트의 후속으로 5년간 민관 합동 4,000억을 투입한다고 한다. 이름은 ‘글로벌 창조 소프트웨어 (GCS)’로 바뀌었다. 과연 WBS에서 얻은 우리의 교훈이나 성과, 그리고 부족했던 점에 대해 치열한 반성과 분석을 하고 GCS정책이 입안 되었을지 궁금하다.
 

어설픈 ‘지원’으로 시장 교란하지 말고 시장을 키워라

그렇다면 이런 전문 소프트웨어 회사를 키우는 정부의 정책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답은 적정한 시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제 값에 적극적으로 구매해주는 것이 기업을 도와주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소프트웨어 구매 예산을 줄이고, 더 적은 비용으로 해결 했다고 칭찬하는 정부가 아니라, 때로는 미션 크리티컬한 분야가 아니면 조금 부족한 수준의 솔루션도 적극 구매해서 시장을 키우려는 노력이 우리 기업에 도움이 된다.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마케팅을 지원하겠다는 의욕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그건 기업이 더 잘 알고, 이미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영역이다.

또 무슨 무슨 혁신 센터를 전국 곳곳에 많이 설립하고 이를 통한 생태계를 만든다고 한다. 지금까지 이렇게 만들었던 수많은 센터와 조직의 성과에 대한 분석은 없다. 예산은 아마도 그런 센터를 만들고 직원을 뽑고, 각종 행사를 하는데 많이 투여됐을 것이다.

지금 테헤란로 근처에서 다시 형성되고 있는 자연스러운 창업과 코워킹을 위한 생태계는 정부의 정책에 힘입은 것이 아니다. 네트워킹과 협업이 자발적으로 잘 이뤄지고 있는 곳인데, 여기에 정부 주도 하의 어떤 기관이 들어와서 오히려 생태계를 교란할까 봐 걱정이다. 잘하는 곳은 그냥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정부가 또 늘 하는 얘기들이 인력 양성과 창업자 확대다. 소프트웨어 분야의 가장 큰 독은 수준이 떨어지는 인력이 난립해 오히려 시장을 교란하고 기존의 엔지니어들에게 오히려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업계가 소프트웨어 인력 양성 정책 얘기만 나오면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이 이번에는 소프트웨어 인력 몇 십만 명 양성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창업자를 양성한다고 한다.

기술창업자를 양성하다면서 교수, 연구원 창업 제도 이야기가 또 나온다. 이미 많은 경험을 통해 거의 효과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어있다. 교수가 창업한 회사에는 투자를 안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 벤처캐피탈들도 있다. 창업과 사업은 그만큼 어려운 것이고 개인의 성향과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교수직을 버리고 나와서 할 만큼의 열정이 없으면 창업은 성공할 수 없다.

 

software.kr을 들여다보니

50만 명에게 3D 프린팅 교육을 시켜 소프트웨어의 개발이나 DIY 생활화를 한다는 얘기에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우리나라에 이런 교육이 필요한 것인지 설명이 없다. ‘1인 1앱 만들기’ 사업 역시 많은 예산의 낭비가 걱정이 된다. 원래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잘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게다가 정부도 중요하게 보는 사물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시장은 앱 기반을 넘어선 새로운 사용 방식을 논하고 있다.

물론 정책의 방향과 목표가 다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 정책을 수행하는 방식이 늘 하던 과거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성과 조기 가시화를 위해 역량 총 결집 필요' 이런 문구가 정책 문서에 나오면 정말 걱정이 된다.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정책이 망가지는 가장 큰 이유? 바로 조기에, 누구의 임기 내에 가시적 성과를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현재 미래부는 소프트웨어의 중요성과 가치 인식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SW중심사회 포털(software.kr)’을 운영한다. 누구나 참여하고 의견을 나누고 소통과 교류를 목적으로 한다는 정책 제안 공간에 올라와 있는 정책 제안은 현재 0이다. 실제로 제안을 하려면 본인 인증, 연락처, 주소 등 개인정보를 다 채워넣어야 한다.

캐나다 밴쿠버는 스마트시티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다양한 소셜미디어, 직접 만나는 워크숍, 이벤트로 장을 열었다. 35,000 명의 시민이 참여했고 그 중 9,500 명이 아이디어와 피드백을 제공했다. 통제된 방식으로 하나의 온라인 사이트를 만들어 참여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은 시대에 뒤쳐진 방식일 뿐이다.

‘SW 중심사회 포털’이라는 웹사이트에는 정책 안 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와 통계 자료도 올라와 있다. 당분간 이 사이트의 내용이 거의 업데이트 안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왜냐면 정부는 늘 만들어서 여는 것만 신경 쓰지, 이런 사이트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예산과 인력을 확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는 끊임없이 개선하고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기본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서다.
 

제발 좀 길게 보자

이번에 발표한 소프트웨어 중심의 정부 정책은 그 동안 논의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내용이 정부 주도의 육성과 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동안 일이 안 된 이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할 수밖에 없다.

며칠 전 정부의 ICT 연구 개발 정책을 어떻게 혁신 할 것인가는 과제를 수행하는 컨설팅 기업이 찾아 온 적이 있다. 그들을 만나 나는 “이런 혁신안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그 동안 나온 혁신안을 잘 실행만 해도 좋은데 또 매년 혁신 한다고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정말 혁신 하려는 의지 없이 혁신 하는 척만 하는 것을 너무나 많이 봤기 때문이다. 20세기 방식으로 21세기를 해결하려는 모습만 보였기 때문이다.

큰 제목에서는 무엇인가 얘기하는 것 같아도 실제 세부 내용에선 과거 방식을 재차 반복하고 있는 정부의 소프트웨어 정책을 보면, 아직도 소프트웨어 산업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세계적 기업인 삼성전자조차 어려워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것이 소프트웨어 역량이다.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정말로 긴 호흡을 갖고, 기반을 다지면서, 단기간의 성과가 아닌 큰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는 정책을 만들길 기원한다. 

키워드 / 태그 : 소프트웨어, 글로벌창조소프트웨어, 미래부, 창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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