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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의 통과에 276일 … 민생·무쟁점 법안엔 ‘급행제’ 시급 2017-11-19 02:38:58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은 지난 2월 ‘심·뇌혈관 질환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한국인의 사망 원인 2위와 3위를 기록할 정도로 위험도가 높은 심장·뇌혈관 질환에 대한 예방· 관리체계를 구축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복지위에 올라온 다른 1315개 계류 법안에 밀려 아직 심의도 시작되지 않았다. 문 의원은 “여야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법안을 먼저 내밀다 보니 정작 심·뇌혈관 질환처럼 골든타임을 요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조현욱 상임이사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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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을 발의한 지 1년이 다 됐는데도 아직 한 번도 논의해본 적이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은 지난 2월 ‘심·뇌혈관 질환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한국인의 사망 원인 2위와 3위를 기록할 정도로 위험도가 높은 심장·뇌혈관 질환에 대한 예방· 관리체계를 구축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복지위에 올라온 다른 1315개 계류 법안에 밀려 아직 심의도 시작되지 않았다. 문 의원은 “여야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법안을 먼저 내밀다 보니 정작 심·뇌혈관 질환처럼 골든타임을 요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국회선진화법(개정 국회법)이 처음으로 시행된 19대 국회가 뚜렷한 명암을 드러내고 있다. 폭력 국회라는 오명은 벗었지만 입법 생산성이 떨어지는 ‘식물 국회’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1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9대 국회에서 접수된 1만7328건의 법안 중 현재까지 5922건(대안 반영 폐기 법안 포함)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가결 건수는 18대 국회(6178건)와 비슷했지만 가결률은 44.4%에서 34.1%로 10%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부결·폐기로 사라진 법안을 제외하고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만 1만1093건에 달한다.

<본지 12월 6일자 1면>

  중앙SUNDAY가 19대 국회에서 가결된 법안(위원장안 제외)의 처리 기간을 분석한 결과 법안 발의에서부터 본회의 통과까지 평균 276.5일이 걸렸다. 법안 발의 이후 평균적으로 9개월 정도가 지나야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다는 뜻이다. 국회선진화법으로 새로 도입된 의안자동상정제(발의된 법안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 상정하는 제도)의 효과로 18대 국회(327.4일)보다는 처리 기간이 49일가량 줄었지만 1년 이상 장기간 계류 중인 미제 법안이 7228건에 달해 법안 처리 과정에서의 적체가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여야 간 이견이 큰 쟁점 법안의 경우 처리 과정이 더욱 더디다. 19대 국회가 출범한 2012년에 처음 발의됐던 북한인권법안(1291일)과 사회적경제 기본법(592일)은 아직 상임위 법안소위조차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1년 이상 미룬 법안만 7228건

이전 국회에서 반복돼온 의장석 점거와 같은 물리적 충돌이 회의장에서 사라진 것은 선진화법이 기록한 긍정적 성과다. 법안 강행 처리의 상징이었던 국회의장 직권상정도 발동 요건을 ‘천재지변 등’으로 엄격히 제한하면서 사례가 확연히 줄었다. 18대 국회에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등 99건을 직권상정으로 처리했지만 19대 국회에선 직권상정 처리 안건이 6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직권상정이란 법안 처리 수단이 사실상 무력화되면서 대신 여야 지도부 간에 ‘법안 거래’라는 악습이 일상화됐다. 19대 마지막 정기국회에서도 여야는 전혀 관련 없는 관광진흥법과 대리점거래공정화법(일명 남양유업법)을 맞바꿔 통과시켰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국회선진화법이 높은 수준의 타협과 합의보다는 낮은 수준의 거래를 촉진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며 국회의 현주소를 꼬집었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전 국회에서도 예산안과 법안을 거래하는 관행은 있지만 19대 국회의 경우 국회선진화법이 여야 지도부 간의 법안 거래가 제도화되도록 조장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소수당의 법안 발목 잡기를 막는 장치가 없는 건 아니다. 여야는 직권상정 요건을 강화하면서 보완책으로 안건신속처리제(패스트트랙)를 도입했다. 상임위 또는 본회의 재적 의원 5분의 3이 동의할 경우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돼 빠른 입법 절차를 밟는 내용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패스트트랙의 절차를 밟아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단 한 건도 없다.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되더라도 국회선진화법 규정에 따라 해당 상임위와 법사위에서 각각 최장 180일과 90일 동안 논의하도록 돼 있는 데다 본회의(최장 60일)까지 통과되려면 최대 330일(11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회 일각에서는 이 기간을 110일 이내로 줄여야만 패스트트랙의 취지가 살아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KTX가 달리는 속도의 패스트트랙이 아니라 간이역마다 서는 베리 슬로 트랙”(유기준 새누리당 의원)이란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민생 법안 우선 처리 절차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법안 처리의 병목현상을 해소하려면 입법 과정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쟁점 법안에 밀려 상임위에 묶여 있는 민생법안이나 무쟁점 법안을 우선 처리하는 별도의 절차를 마련하는 게 급선무라는 것이다.

 미국 의회에선 신속처리가 요구되는 특정 법안의 경우 통상적인 입법 과정이 아닌 별도의 절차를 통해 처리한다.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긴급 대책으로 미 의회를 통과한 ‘긴급경제안정화법’(The Emergency Economic Stabilization Act)이 대표적인 사례다. 발의된 법안 내에 아예 해당 법안의 심의를 신속하게 처리하도록 규정하는 조항을 함께 포함시켜 법안 심사나 본회의 표결의 지연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의회의 수정안 제출도 제한했다. FTA 등 무역 관련 법안도 이러한 신속처리 절차를 통해 심의되는 대표적인 의안이다. 의회는 법안을 수정할 수 없으며 대통령이 제출한 지 90일 이내에 표결해야 한다. 6개월이 넘는 공방 끝에 한·중 FTA를 처리한 국회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전진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은 “미국은 무역 비준, 정부조직법 등 행정적 특권이 인정되는 법안에 한해 법안 처리 절차를 해당 법의 조문으로 직접 규정해 넣기 때문에 법안 처리의 신속성이 담보된다”며 “패스트트랙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적용 대상 법안을 규정하고 처리 기간도 실효성 있게 대폭 줄이는 방향으로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선 특정 법안엔 별도 절차 마련

 법안 자구 심사와 같은 사전 심의로 법안 처리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을 받아온 법제사법위원회의 기능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나온다. 법사위가 당리당략에 따라 법안 처리 과정을 지연시키는 ‘게이트 키퍼’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진민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거보다 법안 자구 심사 등의 필요성은 크게 줄었지만 오히려 입법 과정을 어렵게 하는 정략적인 정당 간 대립의 장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며 “법사위를 다른 상임위처럼 관련 부처의 업무를 다루는 일반 상임위로 전환해야 입법 처리 속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선진화법 개정에 앞서 국회의 후진적 관행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양당 간의 협상에만 의존해 상임위와 본회의 일정을 잡다 보니 법안 심의는커녕 회의 일정을 잡는 것조차부터 정쟁이 발생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상임위와 본회의 일정을 정례화하는 상시 국회 운영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박명호 교수는 “국회선진화법이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여야 의원들 간에 다른 당의 법안에도 찬성표를 던지는 ‘크로스 보팅(교차 투표)’이 가능해져야 한다”며 “지금처럼 지도부 몇 사람이 모여 담판으로 해결 짓는 방식만으론 선진화법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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