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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 성패를 가르는 두 가지 포인트 2017-11-19 02:08:58
지난 7월 16일 박준영 전 전남지사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다. 박 전 지사는 탈당 후 “새정련으로는 총선·대선에서 필패할 것”, “총선 전 신당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며 그 동안 야권을 무성하게 뒤덮었던 신당창당이라는 풍문을 표면화시켰다. 그 동안 한국의 정당사를 살펴보면 신당창당은 성공과 실패, 혹은 절반의 성공이라는 세 가지 사례가 모두 존재했다. 그렇다면 박 전 지사의 주장대로 신당창당은 성공할 것인가?
박왕규(wgpark21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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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6일 박준영 전 전남지사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다. 박 전 지사는 탈당 후 “새정련으로는 총선·대선에서 필패할 것”, “총선 전 신당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며 그 동안 야권을 무성하게 뒤덮었던 신당창당이라는 풍문을 표면화시켰다. 그 동안 한국의 정당사를 살펴보면 신당창당은 성공과 실패, 혹은 절반의 성공이라는 세 가지 사례가 모두 존재했다. 그렇다면 박 전 지사의 주장대로 신당창당은 반드시 성공할 것인가?

 

신당창당 성공사례: 명분과 강력한 지도자 존재

신당창당 성공 조건은 명분과 강력한 지도자의 존재다.

85년 1월 18일 창당한 신한민주당(약칭 신민당)은 창당 25일 만인 85년 2·12 국회의원 선거에서 67석(지역구 50석, 전국구 17석)을 얻어 당시 관제야당이라 불렸던 민한당을 제치고 제1야당으로 등장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 성공배경에는 전두환 정권의 폭압정치에 대한 반감과 신민당의 실질적인 산파였던 YS-DJ라는 막후 실력자들의 존재가 자리잡고 있었다.

두 번째 사례는 95년 9월 5일 출범한 새정치국민회의(약칭 국민회의)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실정을 거듭하고, 야당인 민주당은 리더십 부재로 심각한 당내 계파갈등을 겪고 있었다.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김대중은 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총재로 정계에 복귀했고, 96년 4·11 제15대 총선에서 의석수 79석(지역구 66석, 전국구 13)을 얻어 제1야당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2003년 11월 11일 창당한 열린우리당(약칭 우리당)의 경우다. 새천년민주당의 당권을 장악하고 있던 동교동계의 구태정치에 반발한 ‘천·신·정’으로 대표되는 당내 소장파 개혁세력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였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있던 해인 2004년 4·15 제17대 총선에서 의석수 152석을 확보하면서 제1당이 되었다. 세 사례 모두 신당창당의 뚜렷한 명분이 존재했고, 각각 YS-DJ,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구심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신당실패 사례: 명분과 강력한 지도자 부재

반면 실패사례는 명분도 없고 강력한 지도자도 부재한 경우다.

2000년 3월 8일 김윤환 등의 주도로 창당된 민주국민당(약칭 민국당)은 그해 있었던 4·13 제16대 총선에서 2석(지역구1, 비례1)을 건졌지만,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는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제19대 4·11 총선을 앞두고 박세일 전 한나라당 의원 주도로 2012년 2월 13일 창당된 국민생각 역시 총선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 어느 곳에서도 의석 획득에 실패했다. 2012년 3월 12일 한광옥을 위시한 민주통합당 공천 탈락에 반발한 구 민주계 인사들과 장기표의 녹색통일당이 통합하여 창당한 정통민주당 역시 그해 제19대 4·11 총선에서 지역구와 비례 모두 의석 획득에 실패하였다. 이들 신당의 경우 명분도 없고, 강력한 지도자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당내 비주류 인사들을 중심으로 선거를 앞두고 급조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당 중간사례: 강력한 지도자 존재

신당창당의 중간사례로 친박연대와 친박무소속연대가 있다. 2008년 3월, 제18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후보 공천에서 친박인사들이 대거 탈락하였고, 당시 박근혜 전 대표는 이들에게 “살아서 돌아오라”는 주문으로 우회적인 힘을 실어주었다. 그 결과 친박계는 “친박연대”라는 당명을 내걸고 2008년 4·9 제18대 총선에서 비례 8석, 지역구 6석의 총 14석의 의석을 확보하면서 원내 4당으로 진입했다. 한편 정당에 가입하지 못한 또 다른 친박인사들은 김무성 의원의 주도로 친박무소속연대로 출마하여 총 25명의 무소속 당선자 중 영남지역에서만 12명이 당선되었다. 이러한 성과는 친이계에 의해 친박계가 일방적으로 “공천학살”을 당했다는 명분과 박근혜라는 강력한 지도자를 등에 업은 ‘근혜마케팅’이 주효하게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남지역의 강한 지지기반으로 다수의 당선자를 배출할 수는 있었지만 전국적 현상으로까지 확산되지 못한 절반의 성공이었다.

 

신당창당, 성공의 바로미터는?

앞서의 사례에서 살펴봤듯 신당창당은 뚜렷한 명분과 강력한 지도자의 존재여부가 그 성패를 결정했다. 현재 야권에서 진행되는 신당창당에 대한 논의 핵심은 지난 4·29 재보궐에서 텃밭인 광주와 서울의 호남이라 불리는 관악을에서의 패배에서 보듯 문재인 대표를 정점으로 한 친노 주도의 새정연으로 다음 총선과 차기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회의다. 그러나 이 정도 명분만으로는 신당창당이 현실화되기 어렵다. 문재인 대표를 제외한 박원순 시장, 안철수 전 대표, 김부겸 전 의원, 안희정 지사, 손학규 전 대표 등 야권의 잠룡으로 거론되는 강력한 리더십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신당논의는 찻잔속의 태풍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호남의 지지기반을 토대로 신당이 다수 당선자를 낸다면 친박연대처럼 절반의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 하지만 제일 큰 승부처인 수도권에서도 승리하여 제1야당 교체라는 성공을 가져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신당이 성공하기 위해 충족해야 할 조건은 결코 녹녹치 않다.

키워드 / 태그 : 신당, 박준영, 천정배, 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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